그녀가 자신을 만나기 이전의 나의 기억을 몽땅 지워버리고 싶다는 말을 거듭 했을 때, 무덤덤한 척했지만 몹시 당혹스러웠다. 내가 그녀를 그렇게 곤혹스럽게 했나? 하긴 그 이전의 사랑이 멈춘 지 4년이 넘도록 난 그 어떤 사랑의 기억에 수시로 휘둘려왔다. 새로 시도된 사랑들은 그 이상한 마력 때문에 본론을 시작하기도 전에 수그러들곤 했다. 어떤 종류의 기억이 인간을 이렇게 오래도록 흔들어놓을 수 있다는 걸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깨닫곤 했다.
대단하군, 훌륭하다. 감탄은 했지만 정서적 울림까지는 아니었다. <토탈 리콜> <공각기동대> <블레이드 러너> 등 ‘공인’된 SF에서 기억을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으로 치환해 던지는 장면들이 그랬다. 그렇지만 기억을 사랑의 정체성과 연결짓는 장면이 나오면 확 달라진다. 기억과 사랑의 교차점을 예쁜 미스터리 로맨스로 엮어낸 이와이 순지의 <러브레터>를 처음 봤을 때 신선함을 느꼈지만 뭔가 이상하고 찜찜했다. 중학교 동창 후지이 이츠키에 대한 기억이라고는 이름이 같아 골탕먹던 것밖에 없던 또 다른 이츠키(나카야마 미호)는 잊었던 기억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끝내는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해냈다. 그가 자신을 대단히 사랑했고 그뒤로도 오래도록 그 사랑의 기억을 간직했다는 걸. 문제는 그가 죽어버렸다는 거다. 이상한 느낌의 정체는 이거였다. 아련한 사랑의 느낌만 남겨두고(기억하게 만들고) 그는 사라졌다, 홀로 남은 그녀는 (그 기억을 가지고) 어쩌란 말이냐. 이와이 순지에게서 어떤 잔혹함마저 느껴졌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는 기억과 사랑 사이의 해묵은 테마를 무자비하게 던졌다. 자신에 대한 기억이 삭제된 ‘헛껍데기’ 같은 그녀를 붙잡고, 그러니까 옛 기억을 껴안고 철수(정우성)는 사랑을 지속하겠다고 결심한다. 무서운 사내다. 그렇게 사랑의 기억이 대단할 수 있다고 믿게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정작 영화는 그 순간부터 질문의 진정성을 지워갔다. 그 사내가 한번만이라도 회의하며 주춤거리는 모습을 봤더라면 이 테마는 현실감의 무게로 다가왔을지 모른다. 그게 아니면, 지 아비나 그 새끼나 마찬가지라고 독설을 내뱉던 엄마(김부선)의 처절한 사연을 조금만 보여줬더라도, 그래서 무서운 부모의 경험이 트라우마가 되어 결혼을 거부하던 정우성의 결심이 최후의 베팅이었다는 걸 믿게 해줬더라면 이 영화는 나에게 교훈적인 경험이 될 수도 있었을 거다.
‘교훈’은 <하나와 앨리스>에서 <러브레터>와 정반대의 노선을 취한 이와이 순지에게서 날아왔다. <하나와 앨리스>에서 하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선배가 섀시문에 부딪혀 잠시 기절하자 놀라운 거짓말을 생각해낸다. “선배, 기억 안 나요? 나한테 좋아한다고 고백했잖아요.” 거짓 기억상실증이 만들어낸 사랑이 시작되고, 선배는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 사랑의 기억들을 하나씩 주입당한다. 이와이 순지는 이 만화 같은 설정에 기묘한 현실감을 선사하며 사랑과 기억의 일방향성을 순식간에 뒤집어버렸다. 무엇보다 그 선배가 거짓 주입당한 그 이전의 사랑, 그러니까 앨리스에게서 진짜 사랑을 느끼는 대목에서 뭔가 머리 속을 번개처럼 스쳐갔다. 사랑의 기억, 그거 아무것도 아니잖아! 그건 아무런 기원이 없는 관념의 페티시즘일 수도 있었다. 다음은 앨리스의 엄마. 그는 사랑의 회로에 갇힌 채 딸보다 더욱 소녀 같은 모습으로 성장을 멈춰버렸다. 잠깐 등장하는 그 엄마가 왜 그리 인상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멋대로 그를 판단해버렸다. 사랑의 기억이라는 유령에 홀려 저렇게 되었군! 결국 난 결심에 이르렀다. 이제 유령에 홀리지 말고 ‘지금’에 베팅하자고.
이성욱 lewook@cine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