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하나 제대로 된 게 나왔다 싶으면, 그걸 개나 소가 말이나 꿩 될 때까지 흉내내고 베껴먹고 우려먹는 것이 작금의 추세인 듯하다. 그런데 이러한 자들이 흉내를 제대로 내기라도 하면 또 모르겠는데, 좋은 것에서 떨어지는 떡고물을 마치 집먼지진드기마냥 각종 구린 인분(일명 ‘쒯덩어리’)으로 재가공하고 있는 현실이니 어찌 개탄을 금할 수 있을쏜가.
어쨌든, 최근 그러한 사회적 진드기 집단에 집중적으로 먹이가 된 영화로 우리는 단연 <식스센스>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개나 소나 말이나 꿩은 물론이고, 영화를 만든 감독 본인조차도 자신의 작품을 베껴먹게 하고야 만, 근래 보기 드문 초강력 소스였다 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 국내외에서 양산되었던 그 수많은 <식스 센스>의 후예들 중, 놀랍게도 쒯덩어리의 함정을 뛰어넘어 나름대로의 입지를 구축해내는 데 성공한 영화가 있었으니 그 영화가 바로 <나비효과>다.
그러나 필자는 나름대로 멀쩡한 이 영화에 대해서도 언제나처럼 결정적 불만사항 하나 품고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이 영화의 제목에 대한 것이다.
영화를 보면 아시겠지만, 주인공은 주위 사람들을 불행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계속해서 과거로 돌아가서 공사다망하게 동분서주한다. 하지만 이 내용은 결국 나비효과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예를 들어, 20살인 주인공이 15살이었던 과거로 되돌아간 뒤, 나쁜 친구에 의해 자루 속에서 화장당할 뻔한 자신의 강아지를 구출하는 데 성공했다치자. ⇒ 그런데 그 강아지는 얼마 뒤 광견병에 걸려서 주인을 물게 된다. ⇒ 그렇게 광견병에 감염된 주인공은, 때마침 그 마을 중학교를 시찰차 방문한 미국 대통령에게 갑자기 달려들어 광견병을 옮기고 만다. ⇒ 엄격한 보도통제 아래 그러한 사실이 외부로 흘러나가지 않는 사이, 평소 운동이 부족했던 미 대통령의 병세는 급격히 악화되고 ⇒ 마침내 보름달이 뜬 어느날 밤 광기에 사로잡힌 대통령은 미처 측근들이 손을 쓸 틈도 없이 중국과 러시아와 일본을 향한 핵 미사일 발사 버튼을 눌러버림으로써, 세계 3차대전이 발발하고야 만다. ⇒ 그리하여 20살의 주인공은 집도 절도 없이 모두가 날아가버린 터미네이터적 세계에서 살게 되었더라… 뭐, 이런 식으로 나가면 이건 나비효과라 할 수 있을 게다.
하지만, 주인공이 일으킨 변화는 자신의 주변의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극히 <백 투 더 퓨처>스러운 것일 뿐이었다. 베이징의 나비 날개가 뉴욕에 허리케인을 발생시키는 그런 게 아니었단 말이다.
그렇다면, 왜 주최쪽은 이 영화에 ‘나비효과’라는 제목을 굳이 붙여야만 했을까. 뭘 물어. 그게 더 있어 보이고 장사 잘될 것 같으니까 그런 거지. 물론 그 상업적 성공을 위한 충정이 전혀 이해가지 않는 바는 아니다만, 그래도 관객과의 게임에서 굳이 그런 반칙까지 구사할 필요까진 없었다고 본다. 영화도 멀쩡한데 말이지.
하긴 베껴먹기와 우려먹기가 무슨 의무사항마냥 벌건 대낮에 자행되는 요즘 같은 세계에서라면, 이 정도는 그냥 귀엽게 봐주고 넘어가야 할 일일 게다.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