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산한 계절을 눈앞에 두고 정세는 파업국면으로 뜨겁다. 하긴 파업에 앞서 ‘지도부만으로 끝나지 않는 100% 해임과 100% 복직 불가’로 변죽을 울릴 때부터 만만치 않았다. 결국 파업 찬반투표의 봉쇄에서부터 파업 참가자 3200여명에 대한 파면, 해직에 이르기까지 노무현 정권의 전투적 국정수행은 일체의 타협도 거부한 채 일사불란하게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개혁입법에서부터 시작해 고작 종부세 하나를 두고도 대가리만 남은 개구리를 만들 정도로 눈치를 보는 사팔 정권이 파업에 대해서는 이처럼 직선적으로 단호하다. 과잉으로 넘쳐흐르는 자신감의 근원이 못내 궁금한데 마침 전공노 파업전야에 내뱉은 행자부 기획실장의 발언이 실마리를 던져준다. “거의 모든 신문사설에서 있을 수 없는 일로 지적했다. 공무원 신분의 안정성 때문에 공무원 시험의 경쟁률은 수백 대 일에 달하고 있다.” 말하자면, 조중동을 등에 업고 실업난을 무기로 능히 파업을 분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덕분에 안티조선과 노빠는 유구무언의 적막고요에 빠져 있다.
파업국면에 즈음하여 LA에서 날아온 대통령의 발언은 이에 대한 보족설명이다. 옮기자면 이렇다. ‘가장 안정된 노동자들이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것이지 실제 심각한 노동자의 직업 안정성은 전혀 다른 데 있고 그들만의 노동운동에 대해서는 심각한 우려를 하고 있다.’ 이게 무슨 소린지 헷갈리는 분들을 위해 정리하자면 ‘배부른 소수의 노동자들이 칭얼거릴 뿐, 배고픈 다수의 노동자들은 침묵하고 있으니 걱정할 일이 없다’는 말이다. 결국 배고픈 자들의 질시와 증오쯤은 능히 선동할 수 있다는 고래(古來)의 파쇼적 자신감의 피력인 셈이고, 이 국면에 뜬금없이 경제와 노동의 양극화가 튀어나온 이유일 것이다. 그 양극에서 노무현이 선택한 것은 우극이다.
파업에 나선 공무원들과 민노총 소속 조합원들의 배가 정말 불러터질 지경에 이르고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굳이 비교한다면 그들보다 사정이 못한 배고픈 노동자들이 적지 않다는 데에는 쉽게 동의할 수 있다. 가공할 실업률로 천지에 넘쳐나고 있는 실업자들이 그럴 것이다. 실직의 위협 아래에서 실질 최저생계비를 겨우 넘나드는 노동자들은 얼마이며, 비정규직으로 위태롭게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수는 또 얼마인가. 그렇다. 많다. 배고픈 자들이 너무 많아서 우리 사회는 터질 것 같은 불만으로 가득 차 있다. 체제는 이 배고픈 자들의 한탄과 분노를 자양분으로 증오와 분열, 갈등을 선동하고, 더불어 배고픈 자들의 불만을 호도하기에 혈안이 되어 이이제이(以夷制夷)와 일석이조(一石二鳥)를 노리고 있다.
이런 선동과 우민정치에 넘어가고 또 넘어가는 인간들의 머리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지 도대체 모를 일이다. 집단이기주의라며 손가락질이다. 파업에 나선 덕에 더 배고프고 더 고단한 처지가 될 것이 뻔하고, 그 잘난 철밥통은 애처롭게 산산조각이 날 터이며, 엄동설한을 눈앞에 두고 일부는 감옥으로, 대다수는 얼어붙은 거리로 내몰릴 처지이다. 그걸 각오한 집단이타주의자들에게 이기주의라니. 지난 30여년의 반복학습이 증명하지만 이런 우매한 자들의 깡통에 정말 있는 자들은 동전 한닢 떨어뜨린 적이 없다. 김영길 전공노위원장은 ‘우리가 흘린 피로 역사는 전진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물론 피를 흘리지 않은 자들에게도 전진한 역사는 시혜한다. 역사란 불공평하기 짝이 없다. 빌어먹을….
민주노총과 전국공무원노조의 파업에서 내걸린 요구들은 ‘정치적’이다. ‘비정규 법안 철회, 노동3권 보장, 한-일 FTA 철회, 국가보안법 철폐, 이라크 파병연장 철회….’ 다름 아닌 한나라당의 수구골통들은 물론, 그들에게 이른바 좌파수구골통이라는 포복절도할 욕을 얻어먹고 있는 열린우리당이 가로막고 뭉개고 있는 이 시대의 개혁적 요구들이다. 그러니 되묻건대, 도대체 어떤 세력이 이 절망적인 시대에 이 개혁적 요구들을 실현시킬 수 있을까. 개혁은 자신의 기득권과 이익을 헌신짝처럼 내던져야 비로소 면허를 얻는 것이다. 공동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어야 자격을 얻는 것이다.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오늘 그 면허와 자격을 쥐고 있는 자들을 나는 찾을 수 없다. 저기 저 파업에 나선 자들밖에는.
유재현/ 소설가·<시하눅빌 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