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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팜므파탈의 시초, <지옥화>
이승훈( PD) 2004-12-02

1958년 흑백 86분

감독 신상옥 출연 김학, 최은희, 조해원

EBS 12월5일(일) 밤 12시

제2회 부일영화상 여우주연상

얼마 전 브라이언 드 팔마의 <팜므 파탈>이 국내에서 개봉했다. 이번주 ‘한국영화특선’에선 한국적 팜므파탈 영화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작품 <지옥화>를 방영한다. 팜므파탈이란 말 그대로 남자를 유혹하거나 이용하다가 결국 배신하는 나쁜 여자, 즉 악녀(惡女)를 뜻한다. 남성에겐 상당히 매혹적인 욕망의 대상이지만 그 대상에게 다가가고 유혹당하면 결국 파멸하고 마는, 흡사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도록 유혹한 뱀과 같은 존재가 팜므파탈일 게다.

1958년에 만들어진 신상옥의 <지옥화>는 제목에서부터 이런 팜므파탈의 이미지를 풍기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팜므파탈은 최은희가 맡고 있다. 많은 영화에서 한국의 전통적 여성상을 주로 연기한 최은희의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영화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이 영화에서 최은희는 이후의 다른 영화들에선 보기 힘든 역을 아주 훌륭히 소화해낸다. <빨간 마후라>에서 술집 마담 역으로 출연하긴 하지만 그때의 이미지보다 훨씬 강렬한 매혹적 이미지를 연출한다. 흡사 마릴린 먼로나 브리지트 바르도처럼 섹시하고 매력적인 양공주 소냐는 진한 화장에 가슴이 푹 팬 타이트한 드레스를 입고 다니며 기지촌의 남성들을 유혹한다. 그런 소냐의 모습은 그 유혹의 끝이 결국은 타락과 파멸의 길이 될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 마력에 빨려들어갈 수밖에 없는 위험한 여자, 팜므파탈의 전형이다. 최은희는 그런 소냐의 역할을 정말 천연덕스럽게(?) 연기해낸다. 사실 이 영화는 직접 보는 것이 몇 마디의 설명보다 훨씬 낫다. 아마 영화를 보고 나면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해방과 전쟁, 미국 문화의 유입과 근대화 등으로 과도기의 혼란 속에서 욕망과 타락, 두려움이 공존하는 혼돈의 시대를 직접 느껴보시기 바란다.

이승훈/ EBS PD agonglee@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