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 쥬스>라는 영화에 대해 알게 된 건 당시만 해도 유일한 영화잡지였던 <스크린>을 통해서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영화 관련 정보를 얻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고 영화가 국내에 수입될 때까지 걸리는 시간도 꽤 길어서 영화잡지에 실린 간단한 기사만 가지고도 꽤 오랫동안 우쭐거릴 수 있었습니다.
제가 기사를 통해 얻은 정보는 대충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팀 버튼이라는 감독이 호러도 아니고 코미디도 아닌 독특한 혼합 장르의 영화를 만들었다. 지나 데이비스와 알렉 볼드윈이라는 배우가 이 영화를 통해 스타가 되었다. 롭 보틴이 이 영화를 위해 흉악한 특수분장을 만들었다…. 하지만 잡지에 실린 줄거리(보나마나 영화를 보지도 않은 기자가 쓴 글을 역시 영화를 보지도 않은 다른 기자가 번역해서 편집했겠지요)로는 도대체 영화의 정체를 알 수 없었고, 군데군데 삽입된 사진은 더욱더 정체불명이었습니다. 특히 제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던 건 계단 앞에 둥둥 떠 있는 위노나 라이더의 사진이었습니다. 이 아이가 도대체 뭘 하는 걸까요? 유령은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유령들에게 벌받는 것 같지도 않고…. 전 정말로 알고 싶었지만 영화는 국내에 수입되지 않았습니다. 하긴 기대도 하지 않았었어요.
몇년 뒤 에서 아침 어린이 방송 시간대에 <비틀 쥬스>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방영했습니다. 나중에 이 시리즈는 MBC에서도 잠시 방영했으니 설정을 기억하시는 분들도 많으실 거예요. 이 시리즈에서 비틀 쥬스와 리디아 디츠는 친구인데, 그들은 사후세계와 현실세계를 넘나들며 괴상한 모험담을 벌입니다.아주 재미있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전 이 시리즈가 꽤 맘에 들었습니다. 애니메이션에 부여한 팀 버튼의 몇몇 캐릭터 디자인도 맘에 들었고요. 특히 전 리디아의 퀭한 얼굴과 눈 밑에 낀 기미가 좋았습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 시리즈는 영화에 대한 궁금증을 전혀 해결해주지 않았습니다. 시리즈에서는 지나 데이비스나 알렉 볼드윈의 캐릭터는 등장도 하지 않는걸요. 영화 스토리와 겹치는 부분도 별로 없었고요.
그러다 또 몇년이 지난 뒤 이 작품이 드디어 <유령수업>이라는 제목으로 출시되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팀 버튼은 우리나라에서 거의 무명이었고 <비틀 쥬스>도 알려지지 않은 영화였기 때문에, 저처럼 소식 빠른 사람들은 ‘무식한’ 비디오가게 주인 앞에서 으스댈 기회를 잡았습니다. 모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모 평론가가 저와 비슷한 경험을 했더군요. <유령수업>이 있냐고 비디오가게 주인에게 물었더니 “저흰 그런 저질 비디오는 안 가져다 놔요”라도 대답하더라나요. 당시 그 평론가가 남몰래 품었을 가벼운 경멸과 우월주의는 저 자신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어땠냐고요? 재미있었습니다. 버튼의 비주얼은 인상적이었고 비틀 쥬스 역의 마이클 키튼과 리디아 역의 위노나 라이더 모두 맘에 들었습니다. 둘이 애니메이션 버전에서처럼 친구가 아닌 게 조금 당황스러웠지만요.
여전히 <비틀 쥬스>는 제가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당시 제가 이 영화에 느꼈던 진짜 흥분은 드문드문 쏟아지는 해외영화 정보를 가지고 으쓱거리던 ‘초보 영화광’의 우월감에서 나온 것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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