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인도여행을 하고 온 분에게 어느 ‘명상마을’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쁜 머리 탓에 그 이름은 잊었지만 내용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입구에서 들어감에 따라 함께 모여 운동을 하거나 춤을 추기도 하는 곳, 함께 식사하는 곳, 함께 공부하는 곳, 그리고 함께 명상하는 곳 등이 차례로 이어진다고 한다. 그런데 거기는 원래는 작은 명상센터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입구에 있는 건물이 그곳인데, 설립자는 자신의 돈을 털어 명상의 집을 짓고 사람들이 마음대로 이용하게 했으며, 자신은 매일 건물을 청소하며 살았다고 한다. 아무 ‘이념’도 강요하지 않았고, 누구든 쉽게 이용할 수 있었기에 많은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고, 그래서 그곳을 다녀간 많은 사람들이 다시 와서 땅을 사고 건물을 지어주어 그 명상센터는 결국 그 지역 일대를 포괄하는 명상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 모든 과정을 시작한 애초의 설립자는 입구에 있는 작은 방에 살면서 화장실청소를 도맡아 하고 허드렛일을 하며 산다고 한다. 하나의 명상센터가 커다란 명상마을이 된 것은 아마도 이런 설립자의 삶과 행동 때문이었을 게다. 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열어두고 자신의 생각과 상관없이 누구든 편하게 지내게 하며, 가장 허드렛일을 하며 일상을 사는 것. 내가 하긴 힘들어도 누군가 해주었으면 하는 일 아니던가! 그게 사람들의 마음을 열게 하고, 돈을 풀어 건물을 짓게 한 원동력이었을 게다.
훌륭한 교육이란 이런 것 아닐까? 모두에게 마음을 열고 스스로 下心을 갖고 몸으로 행하기에, 하라고 하지 않지만 지나가거나 머물다 간 모든 사람이 무언가를 배우게 하고 결국 그들 또한 돈을 풀어 그런 일을 하게 하는 것. 이렇듯, 훌륭한 교육이란 교사의 입에서 나가는 말로 무식한 아랫것들을 일깨우는 계몽이 아니라, 바로 옆에서 행하고 살아가는 방식 자체로 다른 이들을 촉발하여 무언가 새로운 것을 꿈꾸거나 행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우리는 최근 이와 전혀 상반되는 분들이 우리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사업을 벌이고 있음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돈을 풀어 학교를 세우지만, 그 뒤로는 정부와 학생들의 돈으로 학교를 운영하면서 자신이 믿는 신앙을 강요하고 교사들을 자기 맘대로 휘저으며 돈을 벌기 위해 나쁘다는 짓을 별다른 부끄럼 없이 하는 사람들, 그러면서도 그걸 제한하려는 조치들에 대해서는 자신들의 돈을 써가며 이룬 ‘사유재산’을 정부가 앞장서 침해한다고 하며 교육의 자율성을 위협한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을 말이다.
비리관련자의 복귀제한을 기껏 “직업선택권의 제한”이라고 비난하고, 자기 처자식이나 친척을 요직에 앉히는 걸 “사학의 자율성”이라고 주장하며, 학생은커녕 학부모나 교사가 학교운영에 대해 참여하는 것을 “사회주의”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이들에게 교육이나 학교란 대체 무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학교는 그저 자기의 ‘사유재산’이고, 교육이란 자신이 믿는 ‘이념’을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것이며, 교육의 자율성은 운영자의 자율성을 뜻한다고 하는 발상, 나는 학교를 ‘가진 자’고 교육은 내가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니, 학교에서 무엇을 하든, 거기서 무엇을 가져가든, 혹은 학생들에게 무엇을 주든 내 맘대로 하겠다는 주장은 대담하다 못해 뻔뻔스럽다. 운영비의 98%를 학생과 국민의 주머니에서 가져다 쓰면서 어쩜 저럴 수 있지 싶다. 저런 사람들에게서라도 배울 게 있을까? 아니 저런 사람들에게 배워야 할까?
그래서 최근에 그들이 모여 시위를 하며 법안이 개정되면 자신들의 학교 문을 닫겠다고 했다는 소식이 너무 반갑다. 그래, 차라리 문을 닫아라! 교육은 백년대계라는데, 저런 사람들에게 배우느니 차라리 안배우는 게 더 낫다. 그들에게 줄 예산으로 새로 학교를 짓고, 문 닫은 그들의 학교를 사서 아이들의 ‘놀이터’로 만들자. 학교 복도를 돌면서 자기의 재산권에 뿌듯해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남들과 함께 살고 남들을 위해 사는 걸 몸으로 보이는 사람이 학생들을 가르치게 하자. 그러고 몇 년 지나면 한국의 학교가 싫어 이민 갔던 사람들이 돌아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진경/ 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