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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용으로 변신한 테크노, 팻보이 슬림

팻보이 슬림? DJ 노먼 쿡(Norman Cook)의 원맨 밴드 이름이다. 1990년대 후반 프로디지, 케미컬 브러더스와 함께, 일렉트로니카(이른바 ‘테크노’)가 미국시장에서 ‘대망의’ 성공을 거두게 한 주역이다. 성공이라곤 해도 팝 음악의 대세엔 지장이 없는 수준이었지만, 어쨌든 이들 ‘영국산 빅 비트(Big Beat) 삼총사’가 테크노의 대중화에 적잖은 기여를 한 게 사실이다. ‘차갑고 미래적인 음악’이란 테크노에 대한 통념과 달리, 팻보이 슬림의 음악은 팝적이고 복고적이다. 솔/훵크, 하우스, 테크노, 록, 힙합 등 온갖 음악을 소스로 쓰지만(sampling), 결과물은 쉽게 즐길 만한 분명한 비트와 선율로 수렴된다. 또 뮤직비디오에서 느낄 수 있듯, 심각하지 않고 유머러스한 표정을 짓는다(배우 크리스토퍼 워컨의 팬이라면 그의 멋들어진 원맨 댄스가 미소를 남기는 뮤직비디오 <Weapon of Choice>(2000)를 놓치지 말 것.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 6개 부문을 휩쓸었기 때문은 아니고).

그렇다면 4년 만의 신작 <Palookaville>에서도 여전할까. <Praise You>의 서정성을 좋아했던 경우라면 <Don’t Let the Man Get You Down>을, <The Rockafeller Skank>의 다이내믹함을 선호했다면 <Slash Dot Dash>를 들으면 ‘안심’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제 ‘코러스, 코러스, 브레이크다운, 코러스, 코러스, 더 큰 브레이크다운’을 반복하는 것에 질렸다”는 노먼 쿡의 언급은 이 음반이 변화에 초점을 둔 작품이란 힌트를 준다. 샘플링의 비중은 줄었고, 대신 실제 악기 연주가 비중있게 실렸다. 이는 지난해 브릿팝 밴드 블러(Blur)의 <Think Tank>에 참여한 영향이기도 한데, 품앗이처럼 블러의 데이먼 알반이 노래를 불러준 <Put It Back Together>는 대표적이다. 곡의 짜임새 역시 일반적인 기승전결식 구조에 가까운 곡들이 많은데, 몽롱하고 솔풀한 <Put It Back Together>, 브릿팝 스타일의 <Long Way from Home>과 <Push and Shove>, 래퍼 라티프가 주술적인 랩을 들려주는 <Wonderful Night> 와 <The Journey> 등이 그렇다. 이같은 변화는 노먼 쿡이 록 밴드의 베이시스트 출신이란 점, 또 오랜 기간 DJ로서 활동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긍 가능하다. 전체적으로 춤추기 위한 ‘무도장(dance floor)용’이라기보다는 개인 음향기기를 통한 감상용에 가까운 음반이다. 전자를 원했던 이들은 좀 서운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