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꿈이었을까? 지나온 4년은 그저 악몽이었나?” <화씨 9/11>의 오프닝에서 말하던 마이클 무어의 독백이다. 그렇다. 모든 게 꿈이 되었다. 11월2일 이전 <화씨 9/11>를 본다는 것은 재미있는 영화 한편을 보는 것이었지만 지금 이 영화를 다시 본다는 것은 악몽 속에서 악몽을 꾸는 것이며 그걸 알면서도 깰 수 없음에 허탈해하는 것이다. 대선용 프로파간다 다큐를 만들면서까지 마이클 무어는 세상을 바꾸고자 하였건만 불에 타고 있는 자유와 진실은 4년 뒤에나 끌 수밖에 없게 되었다. 비행기 테러에 대한 보고서도 무시한 채 임기의 42%를 휴가로 써먹다가 9/11을 맞이하지만 자신의 가족에게 14억달러를 보내주던 사우디와의 관계 때문에 조기대응도 제대로 못하고, <킬 빌>의 브라이드와 <올드보이>의 이우진이 복수의 방법을 잘 가르쳐주었건만 엉뚱하게 이라크를 침략한 부시가 재선되었기 때문이다.
원작소설과 트뤼포의 영화 <화씨 451> 속의 미래는 TV를 통한 우민/공포정치로 국민들이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끔 만드는 사회다. 그런데 잠깐, 이건 어디서 많이 보고 있는 장면이 아닌가? <화씨 9/11>에서 보여주는 에피소드들, 즉 부시를 욕하였다고 FBI 요원들이 심문한다든가 TV를 통해 ‘임무완수’를 알리는 부시 치하의 미국은 레이 브레드버리가 그렸던 미래사회와 점차 닮아가고 있는 것이다(어쩌면 4년 뒤 미국은 소설과 완전히 같은 모습이 되어 있을는지도 모른다).
암울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마이클 무어는 최근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자살하지 않아도 되는 17가지 이유를 밝혔지만 <화씨 9/11> DVD의 부록에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화씨 451>에서도 책 태우던 소방관이 독서를 통해 ‘책인간’으로 변모하는 것처럼 <화씨 9/11>을 관람한 소녀가 하루빨리 투표권을 얻어 미래를 바꾸겠다고 말하는 모습이 부가영상으로 담겼다. 즉, 이 영화는 여전히 극장과 DVD를 통하여 제 소임을 수행하고 있으며 희망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볼링 포 콜럼바인> DVD의 부록을 보며 웃다 울었던 경험을 하였다면 <화씨 9/11> DVD의 추가/확장신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볼링 포 콜럼바인>과는 비교할 수 없는 흥행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DVD가 1장으로 출시되었다는 점인데 향후 SE버전의 출시를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세상이 허구이기 때문에 오히려 논픽션 만들기를 좋아한다고 말했던 마이클 무어. 세상이 더욱 허구적으로 변하였기에 그가 보여줄 다음 번 진실이 더 기다려진다. We want Mo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