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발매와 리메이크는 오리지널 레코딩을 전제로 한다. 이 ‘지당한 말씀’을 새삼 되새기는 까닭은 김민기라는 존재 때문이다. ‘한국의 밥 딜런’이란 안이한 비유, 한국 모던 포크의 선구자란 평가, 한국 대중음악의 예술성과 현실적 조응을 한 단계 높였다는 찬사는 군내 나도록 얘기되었으니 생략하자. 여기서 질문. 그의 오리지널 음반은 얼마나 팔렸을까. 데뷔 LP(1971)는 초판 500장이 채 팔리기 전에 판매금지되었고, 1980년대 민중가요의 시금석이 된 <공장의 불빛>(1978)은 카세트테이프 초도물량 2천개가 끝이었다. 파시즘적 군사정권이 막을 내린 1987년까지 그의 음악은 ‘불법’의 영역에 속했고 비공식 경로로만 소통될 수 있었다.
수십년의 세월을 뚫고 김민기의 음반들이 ‘세트로’ 우리 앞에 당도했다. 먼저 김민기 전집격인 . LP 형태의 케이스 안에는 1971년 역사적인 데뷔 음반부터, 1980년대 작품인 <엄마, 우리 엄마>와 <아빠 얼굴 예쁘네요>를 묶은 <연이의 일기>, 그리고 1993년 김민기 자신에 의한 4장 짜리 재녹음 음반까지 총 6장의 CD가 담겨 있다. 최초의 공식 재발매이자 CD로는 처음 발매되는 김민기 데뷔작만으로도 가치가 차고 넘치는 음반이다.다른 하나는 <공장의 불빛>이다. 1970년대 노동 현실의 전형적 단면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는 김민기의 가장 직설적이며 실험적인 이 노래극(달리 말해 한국적 뮤지컬 혹은 민중적 오페라)은 DVD와 리메이크 CD라는 외투를 걸치고 발매되었다. DVD 타이틀은 오리지널 테이프의 음원과 민중미술 작품 및 사진들을 결합한 것이고, 리메이크 CD는 전인권, 이적, 이소은, 이승렬, 푸리 등이 참여해 다시 만든 것이다. 리메이크를 주도한 정재일은 원곡이 강렬한 선율과 에토스를 지닌 <야근> <돈만 벌어라>에서는 힘에 부치는 느낌이지만, ‘사운드’를 중심에 놓은 <교대> 등에서는 흥미로운 재해석을 들려준다. 전체적으로 원작의 무게에 눌리지 않은 비교적 성공적인 리메이크라고 평가할 수 있을 듯하다.
김민기의 오리지널 레코딩을 들어보지 않았다면, <Past Life of Kim Min Gi>와 <공장의 불빛>은 반드시 구입해야 할 음반이다. 전자의 경우 10만원 남짓 되는 부담스런 가격과 낱장 구입이 불가능하다는 점, 후자의 경우 오리지널 음원이 CD 형태로는 없다는 점이 흠이라면 흠. 그 정도는 오리지널 레코딩이 안길 충격으로 상쇄할 수 있다면 망설이지 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