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에 따르면 세계사란 ‘절대이성’이 미개하거나 야만적인 모든 문화를 포섭하여 이성의 발전과정 안에 끌어들이는 것이, 단적으로 말해 유럽화하는 것이 역사의 법칙이다. 비록 볼썽사납게 벗고 있거나 야만스런 가면을 걸치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이미 처음부터 이성의 범위 안에 있는 것이다. 그 절대적 이성이 바로 헤겔 같은 유럽인이 알고 있는 이성이며, 그들이 사용하는 이성이고, 따라서 유럽인의 이성이라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미개하고 야만적인 곳을 포함한 세계의 모든 곳이 바로 이성의 범위 안에, 그 이성의 주인인 유럽의 범위 안에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헤겔의 역사철학은 유럽이 세계의 일부인 게 아니라 세계가 바로 유럽의 일부라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비슷하게도 최근의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은 서울이 한국의 일부인 게 아니라 한국이 바로 서울의 일부란 것을 보여주었다. 서울이 단지 수많은 지역 중의 하나를 표시하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한국의 확고부동한 중심을 표시하는 일반명사임을 통해서, 서울의 위치를 결정하는 것이 국가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헌법적인’ 문제임을 확언함으로써, 그리고 국민 전체의 이름으로 서울의 위치를 과거의 관습대로 유지하는 것이 국가의 기강을 세우는 중심문제라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말이다. 이로써 소유한 부동산 값을 염두에 둔 일부 구민(區民)의 쪽팔리는 요구는 역사와 전통을 들먹이는 전체 국민의 자랑스런 요구로 전환되었다. 이럼으로써 이제 서울은 강남의 일부임이 분명하게 드러난 셈이다.
마르크스는 어디선가에서 “역사는 두번 반복된다. 한번은 비극으로, 다른 한번은 코미디로”라고 말하면서 삼촌인 나폴레옹처럼 쿠데타를 통해 황제가 된 나폴레옹 3세를 조롱한 바 있지만, 전세계의 학자들이 유럽을 지방화하기 위해, 세계를 유럽이란 틀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는 시기에, 200년 남짓된 관습적(!) 논리가 이런 식으로 반복된다는 것은 정말 웃지 않을 수 없는 코미디임이 분명하다. 확실히 지금은 코미디의 시대임이 분명하다. TV도, 일상생활도, 심지어 정치도, 재판도 잘 웃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그런 시대인 것이다.
그러나 웃으면서 씁쓸해지는 것은 나 역시 피할 수 없는 이 땅에서의 삶이 아직도 관습 내지 습관이라는 과거의 힘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조선조 이래 지배적인 관습이기에 버릴 수 없는 전통이고 바꿀 수 없는 것이라는 논리가 헌법을 해석하는 최고의 규칙인 것이다. 동성간의 결혼, 그건 말도 안 된다. 동성동본의 결혼조차 금지한 오래된 관습이 조선시대 이래 헌법처럼 이어지고 있는 이 나라에서 어디 꿈이라도 꿀 수 있단 말인가! 여성들의 정치, 혹은 여성들의 경영? 그걸 말이라고 하냐! 성매매를 금지한다고? 아니 성매매는 실로 오래전부터, 아마도 조선이 아니라 신라, 고구려까지 거슬러올라할 수 있는 오래된 관습이고 전통 아닌가! 결혼을 안 하는 것도, 애를 안 낳는 것도(박정희 정부의 가족계획정책도!) 모두 이런 점에서 위헌이다!
‘관습헌법’의 이 희극적 논리만은 아니다. 과거의 힘에 의해 현재를 지배하려는 태도는 국가보안법을 이 나라의 ‘국헌’을 지켜온 자랑스런 전통쯤으로 생각하는, 그래서 싸가지 없는 좌경운동권이나 감히 폐지를 꿈꾼다고 믿는 사람들, 혹은 과거의 선배들의 입학경력으로 현재의 지원자들을 선발하겠다는 잘 나가는 대학들의 입학정책…. 죽지 않고 살아 있음을 입모아 외치고 있는 이 땅의 자랑스런- 돈 모으고 권력 주변을 맴돈 거 말고 대체 자랑할 게 하나라도 있는지?- 보수파들의 웃기는 코미디들의 일관된 주제는 이것이다. 과거로 하여금 말하게 하라!(앗, 친일 경력은 빼고!) 과거로 하여금 지배하게 하라! 미래는 과거 안에 있는 것일지니….
죽은 자가 산 자를 지배하는 사회, 그게 바로 그들이 꿈꾸는 사회다. 이전에는 이것이 중립성으로 포장된 일반적 정당화의 방법 안에서 표명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주 노골적인 일방적 언사들로 표명된다. 그것은 종종 봐서 알다시피 초조함의 징후거나 무능력의 증거다. 문제는 이들과 상대하는 사람들 역시 여유가 없고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이지만, 사실 진정한 여유와 능력이란 그 노골적 희극을 보면서 웃기보단 분노하게 되는 대중에게 기대해야 할 것일 게다. 과거의 힘을 이기는 미래의 힘 말이다.
이진경/ 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원·서울산업대 교양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