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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영화 회고전 ‘사랑과 청춘 1965-1998’ [2]
김혜리 2004-11-09

일본 문화청 문화부장 데라와키 겐 인터뷰

“한국과 무관한 일본은 생각할 수 없다”

이번 회고전을 주도한 일본 문화청의 문화부장 데라와키 겐은 매우 열정적인 공무원이다. 뿐만 아니라 알고보면 정책적으로 사고하는 영화평론가이기도 하다. 고교 2학년 때 <키네마준보>에 기고한 것을 시작으로 영화평을 쓰며 청춘을 보냈으나, 대학 졸업과 동시에 문부성에 채용되면서 영화는 그에게 ‘방과후 특별활동’이 됐다. 그럼에도 1987년부터 89년까지 3년 동안 나온 일본영화를 모조리 보고 리뷰를 썼다는 열의는 전업 평론가 못지않다. “실어주는 매체가 없어 회원제 잡지 <B급 영화평론가 통신>을 매년 자비 출간했다. 평론가가 B급이라는 뜻이었는데 다루는 영화가 B급이라는 뜻으로 오해한 독자도 있었다”는 ‘귀여운’ 일화를 자못 근엄한 표정으로 들려준다. 27년 문부성 공무원 생활 끝에 2002년 받은 문화청 발령은 데라와키 겐 부장이 영화와 공무를 드디어 통합할 수 있게 해주었다. 지난 3월 도쿄에서 개최한 ‘한국 독립영화 특별전’과 이번 ‘일본영화 서울 회고전’으로 이어지는 한-일 영화교류에 대한 데라와키 겐의 이례적 열의는, 평론가로서 지닌 영화적 소신의 연장이기도 하다.

-당신은 오랫동안 일본영화의 평만 쓸 정도로 매우 특정한 영화관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영화를 순수하게 영화로만 보는 경향이 있지만, 나는 영화를 사회의 일부, 사회의 반영이라고 본다. 미국영화 속 인생은 일본 관객에게 동떨어진 별세계일 뿐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살고 있는 사회가 반영되지 않은 한국영화가 관심영역에 포함된 이유는.

=한국과의 연계를 떨치고 일본을 생각할 순 없다. 일본과 한국은 이웃이며 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독일과 프랑스처럼 공동으로 많은 일을 추진할 수 있을 거다. 1998년 한국이 일본 문화를 개방하면서 벽을 무너뜨려주어 내 생각도 진화할 수 있었다. 평론가이기에 앞서 일본의 공무원으로서 한국과의 관계는 일본의 미래에 중요하다고 본다. 각국 소설, 만화, 영화를 서로 리메이크한다든가 열린 공간에서 좋은 영화를 함께 만들어나가든가 하는 시너지 효과를 기대한다.

-‘일본영화: 1965∼1998’은 언제부터 준비했나? 부산영화제의 일환으로 진행된다는 말도 있었는데.

=지난해 10월 한국 정부가 4차 문화개방을 발표하자마자 영화교류를 준비했다. 부산영화제안도 있긴 했지만 애초부터 서울의 일반 상영관에서 치른다는 계획이었다. 영화 마니아보다 일반 시민 참여를 의도한 행사인 만큼 일본문화원, 일본국제교류기금 같은 통상적 창구나 시네마테크를 일부러 피해 가장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메가박스를 택했다.

-<키네마준보> 독자투표를 거쳐 상영작을 선정한 이유는.

=영화전문가가 뽑으면 예술영화, 작가 위주의 목록이 나올까봐 관객에게 ‘내 청춘의 영화’를 뽑아달라고 했고, 그것을 토대로 다시 당대 모든 일본영화를 본 평론가 3인, 시나리오 작가 1인이 선정작업을 했다.

-일본 언론이 이번 회고전을 “이제는 ‘일류’(日流) 붐 차례”라는 관점으로 보도하고 있는 것에 대한 견해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한류 붐에는 문화상품이 창출하는 경제적 이익 측면이 있고 역사, 언어, 문화의 학습 측면이 있는데 두 번째 측면은 오래 지속된다. 내가 <친구>를 보며 한국 남자들이 자라는 모습에 친밀감을 느낀 것처럼 한국인들도, 똑같이 연애하고 선생님에게 혼나며 같은 시대를 살았던 일본인을 영화를 통해 만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