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아무개 만나봤어? 어때? 잘생겼어? 성격 좋아? 친구들을 만나면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하지만 나는 별로 해줄 말이 없다. 한두 시간 만나 얘기 나눈 것으로 그 사람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인터뷰라는 ‘공적’ 만남이라도 그것이 거듭되면 가끔 자신을 ‘열어’ 보이는 경우가 있지만, 대개 배우들은 기자 앞에선 몸을 사리고 입을 단속한다. 그래, 이번엔 꼭 사람 냄새 나는 인터뷰를 쓰고 말 테다, 라는 다짐으로, 용기를 내서, 사적인 질문을 해볼라치면, 뚱한 반응이 돌아온다. <씨네21>에서도 이런 얘기가 기사가 돼요? 영화저널이라는 조금은 특수한 영역에서 ‘연예인’들을 만나노라면, 이런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그들. 이 일을 시작한 지 7년이 넘었지만, 나는 아직도 연예인들을 만날 때면 가슴이 설렌다. 초짜 기자이던 시절에, 연모하던 P의 인터뷰를, 나답지 않게 자청했지만, 결과는 끔찍했다. TV에서 보이던 이미지와는 딴판으로, 그는 냉소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인터뷰어로서의 자질 부족을 반성한 것과는 별개로 내가 꿈꿔온 그가 아니라는 깨달음에 가슴이 무너져내렸고, 며칠을 그 후유증에 시달렸다. 그러고도 정신을 못 차렸는지, 가끔 (내 기준으로) 꽃미남 배우들을 만나면, 현기증이 일거나 말이 꼬이는 걸 느낀다. 언젠가 배우 선언을 한 B(이것이 정녕 이니셜이더란 말이냐)를 만나고 돌아왔을 때 선배들이 ‘얼굴 빨개졌다’고 놀려서, ‘행사장에서 마신 술기운이다’라고 둘러댔다. 지났으니 하는 말이지만, 술에 취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지난 주말에 일 때문에 LA에 다녀왔다. 마침 콘서트 참석차 출국하는 가수들과 한 비행기를 타게 됐다. 앗, 세븐이다! 앗, 비다! 앗, 박진영이다! 나란히 입국 심사를 기다리며, 겉으론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론 몇번이고 악 소리가 났다. 그들이 가수가 아니라 배우들이었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나는 다가서지도 못하고, 살갑게 말을 걸지도 못하고, 멀리서 그냥 그렇게 훔쳐보기만 했을 것이다. 얘야, 침 닦아라, 정신 차려라, 너 기자 맞아?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LA에 도착한 며칠 뒤, 베벌리힐스에서 영화 같은 현장을 접했다. 휴 그랜트와 묘령의 여성이 함께 차를 타다가, 파파라치에게 걸린 것이었다. 그들이 황급히 차를 타는 순간, 카메라를 든 파파라치들은 액션영화의 추적자들처럼 운전대를 휘돌려 전속력으로 따라붙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정신이 없었지만, 사생활의 자유를 차압당한 특급 스타에 대한 연민보다는, ‘목숨’을 내놓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포착하는 파파라치의 모습에서, 뭐랄까, 연민과 경외심이 뒤섞인, 묘한 비애가 먼저 밀려왔다. 연예 저널리즘에 한쪽 발을 딛고 서 있으면서, 스타들의 친구도 적도 되지 못하는 나는 내 주변머리를 탓하고, 우리 매체의 애매한 입지를 탓해왔다. 그런데 그렇게 소외돼 있어서, 그렇게 자유로울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새삼 머리를 스쳤다.
그리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박수홍을 보았다. 앗, 박수홍이다! 12시간 넘는 비행 내내 나는 틈틈이 그를 곁눈질하고 있었다.
박은영 cinepark@cine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