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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녀와 헤어진 이유
장진(영화감독) 2004-11-05

내가 그녀와 헤어진 이유는 간단하다. 아니, 간단하다기보다 분명하다. 그녀는 내게 ‘저 하늘의 별을 따주오’라고 말했고 난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하늘을 한번 바라보곤 도대체 저 많은 별 중에 어느 별일까 하는 궁금증도 갖기 전에 헤어져야겠군, 하고 맘을 먹었다.

그녀는 아직도 내가 그 별을 따다가 줄 능력이 없기 때문에 자기를 포기한 것이라 믿고 있을지 모르지만… 난 그렇게 단순한 이유로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녀의 요구에는 우리의 관계를 지속할 수 없는 아주 다양하고 미묘한 이유들이 숨겨져 있다. 그녀는 왜 그토록 저 별을 따고 싶어할까…. 물론 그 별이 누구의 소유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은지라 따기만 하면 자기의 것이 될 수도 있겠지만 집도 있고 차도 있는 그녀가 저 별마저 갖고 싶어하는 건 욕심이다. 이런 사리사욕을 가진 여자와의 미래는 고달플 확률이 적지 않다. 그리고 하늘에 떠 있는 별을 따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다. 그녀도 모를 리 없다. 일단 거리가 꽤 되기 때문에 그 별까지 가려면 지구에 몇대 없는 비행기를 타야 하고 그걸 타려면 상상할 수 없는 많은 돈을 줘야 한다. 소문에는 세상이 넓다고 우기던 한 기업인도 별을 따려다가 파산했다고 한다. 내겐 무리다. 그러려면 난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심각한 범죄를 저질러야 할지도 모른다. 그녀가 그런 걸 모르고 별을 따오라 했을까? 그럴 리 없다. 또 하나, 그녀가 요구한 별에 무엇이 살고 있을지 모르며 만약에 그 별을 따오려면 약간의 전쟁을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따왔다치자. 그 별을 어디다 둘 건데…. 그 별을 가짐으로써 생기는 세금문제, 사람들의 시선, 나중에 있을 양도문제는 다 누가 책임질 건데…. 아무 대책도 없이 그녀는 그런 요구를 하고 있다. 혹, 그녀는 그럴지도 모른다. 안 따와도 좋으니 따오는 시늉이라도 해봐요! 미친 짓이다. 시늉을 하라니…. 어떻게 하는 건데? 돈을 마련하는 시늉? 몇대 없는 그 비행기를 타는 시늉? 그 별나라 외계인과 전쟁을 하는 시늉? 아니면 그냥 힘차게 하늘 향해 점프를 해보는 시늉? 아, 그녀가 나빴다…. 하늘의 별을 따오라니? 날이 흐리면 잘 보이지도 않고 계절에 따라 모양도 변하고 낮엔 찾을 수도 없는 별을 따오라니?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런 요구를 하다니…. 언제였더라, 여자친구가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한다는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해서 헤어진 나인데…. 언제였더라, 나 죽으면 따라 죽는다는 여자친구에게 목숨가지고 장난치냐라며 또 헤어진 나인데…. 그 밖에도 새끼손가락 들이밀며 말도 안 되는 약속과 협박 수준의 다짐들에 질리도록 질린 나인데…. 별을 따오라니? 여자들은 왜 하늘의 별을 가지고 싶어할까? 그 별을 알고보면 그리 예쁘지도 않다. 우리가 알고 있는 별모양도 아니다. 빛을 발하지도 않을 뿐더러 비포장 노면에 나무 한 그루 없을 확률이 높다. 뭐 그리 별이 좋을까? 감옥 갔다 와서 생기는 별은 그토록 싫어하면서… 별 달기 위해 사관학교 간 사람에겐 눈길 한번 안 주면서… 왜 그토록 별을 따다 바치는 것에 매달릴까? 달도 아니고 꼭 별이어야 하는 이유는 뭘까? 그 별을 보며 한숨 쉬는 남자의 비참함을 모르는 걸까?

난 분명한 이유로 그녀와 헤어졌다. 그녀가 내게 별을 따오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녀와 헤어진 뒤 얼마 안 가 그녀가 별을 따다준 어떤 사내와 사랑에 빠졌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놈 참 대단하네…. 어떻게 별을 따다가 주었을까? 한심해 보이기도 했지만 부러운 맘도 들었다. 난 별을 따다줄 능력이 없기에…. 그리고 얼마 안 가 우리 아버지도 어머니에게 별을 따다주고 결혼에 성공했다는 사실도 알게 됐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그 밖에 몇몇 조상분들도 별을 주고받고 사랑을 이루게 되셨다는 얘길 들었다. 그래서인가….

요즘은 가끔 그런 생각도 해본다. 별을 따보긴 따봐야 할 텐데… 제대로 된 사랑을 하려면…. 별을 따긴 따야 하는데….

정신을 집중하고 밤하늘을 보면 별을 따러 올라가는 많은 남자들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이 진정 사랑을 이루는 길이라면… 나도 역시 별을 따러 가긴 가야겠지만….

그 옛날, 별도 없고 달도 없고 그래서 밤하늘 볼 일도 별로 없던 그런 시절엔 말이다… 조금 더 쉽고 여유있는 사랑의 징표가 있었을 거란… 행복한 상상… 부러운 상상… 그런 상상도 해보곤 하지…. 쓴웃음 지으며….

장진/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