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LA에 간 김에 멕시코 북서부의 치와와(Chihuahua)에 다녀왔다. 계획된 여행은 아니었다. 떠나는 날 아침 LA 다운타운의 그레이하운드 터미널에서 알아보니 19시간이 걸리는 데에다 버스는 오후에나 출발했다. 추석 차례 전에는 돌아와야 했기 때문에 시간을 절약할 속셈으로 차를 몰고 출발했다. 한데, 엘패소에는 자정을 넘겨 도착했고, 치와와에 도착한 것은 다음날 오전 10시경이었다. 시간절약은커녕 엉치뼈에서 아싹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치와와. 판초비야(Pancho Villa)가 활동하던 본거지이기도 했고, 그가 살았고 또 암살되었던 저택이 있는 도시이다. 이른 아침까지 하늘을 덮었던 먹구름과 빗발은 거짓말처럼 깨끗하게 개어 있었다. 공기는 싱그럽기 짝이 없었고 거리는 조촐하고 한가로웠다. 그러나 거리를 오가는 멕시코 사람들의 여유가 내게는 없었다. 게다가 토요일이었다. 시내에 자리잡은 네댓곳의 박물관부터 돌아야 했다.
바쁘게 오가는 중에 문득 깨달은 것이 있었다. 치와와에는 혁명아 에밀리아노 사파타의 흔적이 실종되어 있었다. 중부와 남부의 어디를 가도 눈에 띄던 그 흔한 사파타 티셔츠조차 눈에 띄지 않았다. 흠, 판초비야가 과도하게 앞선 탓일까? 입맛을 다실 즈음에 들르게 된 곳은 베니토 후아레스(Benito Juarez) 박물관. 눈에 익은 그의 흉상이 보기 좋게 벽을 덮은 담 넝쿨을 배경으로 마당 한구석에 놓여 있다. 그는 사파타가 없는 곳에도 있었다.
오래전 멕시코시티에서 출발해 산크리스토발을 마지막으로 했던 여행은 디에고 리베라와 사파타, 그리고 사파티스타(EZLN)를 찾아 떠난 길이었다. 멕시코시티에서 리베라의 무랄이 사방에 층층으로 둘러져 있던 문교부 청사의 그 행복한 풍경을 둘러볼 수 있었던 마당 가운데에 놓인 것은 어린아이와 함께 있던 후아레스의 동상이었다. 그뒤 몇몇 사람에게 물었다. 나는 후아레스야말로 멕시코의 대통령 중 유일하게 존경을 받는 대통령이었다는 말을 쉬지 않고 들었다. 대통령을 존경해? 평생 대통령이란 존경의 대상보다는 혐오와 분노의 대상이기 일쑤였던 내게는 무척 낯선 느낌이었다. 그러나 어디를 가도 나는 후아레스의 흉상과 동상, 부조, 초상화에서 쉽사리 벗어날 수 없었다. 나는 대통령도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베니토 후아레스. 사포테카 인디오 출신으로 양치기 소년이었다. 독학으로 1828년 스물두살의 나이에 오하카주의 변호사가 되었고 후일 정치에 입문했다. 1854년 후아레스와 자유당은 스스로를 황제로 칭했던 산타아나의 장기독재를 무너뜨린다. 대통령이 된 뒤 그는 교회와 국가를 분리하고 교회가 소유하고 있던 휴경지를 몰수했으며 귀족계급만을 위한 특별재판소를 폐지했다. 귀족의 특권을 인정하지 않은 개혁입법이었다. 그는 군의 특권 또한 인정하지 않았다. 교회와 귀족과 군은 모두 법을 따르도록 했다. 초등학교에 대한 의무교육을 실시했다. 보수기득권 세력은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에게 도움을 간청했고, 오스트리아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의 동생인 맥시밀리언을 찾아가 그를 황제로 맞아들인 뒤 내전을 벌이는 것으로 응답했다. 후아레스와 멕시코 민중은 후안무치한 자들과 3년을 싸웠다. 1867년 7월 후아레스는 멕시코시티에 입성했고 공화국을 회복했다. 그는 멕시코의 위대한 개혁과 민주주의 아버지라는 영원히 퇴색하지 않을 이름을 얻었다.
멕시코국립대학(UNAM)의 본부건물(La Rectoria) 입구 옆에는 손가락으로 왼쪽을 가리키고 있는 시케이로스의 입체벽화가 만들어져 있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끝에는 5개의 숫자가 적혀 있다. 1520(스페인 침략), 1810(독립전쟁), 1857(후아레스의 개혁전쟁), 1910(멕시코 혁명), 그리고 마지막 숫자는 언제나 올해이다. 그와 그의 싸움은 그렇게 멕시코 역사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다.
상고를 나와 독학으로 변호사가 된 대통령 노무현에게 우리가 기대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혁명이 아니라 개혁이었다. 노무현이 꿈꾸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국민에게 존경받는 개혁적 인물로 역사에 남는 것이었을 것이다. 이라크 파병과 비정규직 노동법, 사상과 역사, 교육, 언론의 개혁이라는 4대 개혁입법. 어떤 이들의 꿈도, 노무현의 꿈도 모두 물거품이 되고 있다. 개혁은 가치있는 것이다. 그 믿음을 나는 버리지 않고 있다. 후아레스와 같은 인물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더욱 냉철해지고, 더욱 뜨거워져야 한다.
유재현/ 소설가·<시하눅빌 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