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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라는 내가 지키겠다
유재현(소설가) 2004-10-29

이라크에 파병된 한국군은 예상대로 전쟁을 하고 있다. 그들의 적들은 그들의 목에 현상금을 걸었다. 그 소식을 전하면서 텔레비전 뉴스는 한가롭게도 새마을운동에 나선 자이툰 부대의 모습을 비추고 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새마을운동중앙본부가 파병을 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정말 슬픈 일이지만 이제 우리는 형제와 아들이 흘리는 피를 보게 될 것이며, 슬픔은 분노와 두려움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더욱 두려운 일이 있었다. 미국의 북한인권법(NKHRA)안이 9월28일 상원을 통과했다. 이로써 미국은 부시에게 악의 축으로 손꼽혔던 3국 모두에 적당한 미국법 하나씩을 선물했다. 이름은 조금씩 다르다. 이라크해방법(1998), 이란민주법(2003) 그리고 북한인권법(2004)이다. 알려진 것처럼 현재 미상원에는 북한에 관한 또 다른 법안인 ‘북한자유화법안’(NKFA)과 이란을 겨냥한 ‘이란 자유와 지원을 위한 법안’(IFSA)이 상정되어 있다. 자유와 인권, 민주와 해방 등 이 법들을 수식하고 있는 현란한 미국식 수사가 개입과 간섭, 전복, 나아가 전쟁을 의미해왔다는 점에서 모골이 송연해진다(이 법이 ‘해방’으로 수식되는 날 한반도의 우리는 밤마다 불바다의 악몽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 법에 부시가 서명을 하건 케리가 서명을 하건 달라질 것은 없다. 이라크해방법에 서명한 것은 클린턴이었다.

미국이 다른 나라의 인권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은 이제는 구태의연하기까지 한 사실이다. 가깝게는 그레나다 침공 이후 걸프전과 소말리아, 수단, 유고연방,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수행한 전쟁터에서는 예외없이 자유와 인권, 민주, 해방이라는 고귀한 단어들이 검은 포연에 더럽혀져왔다. 때문에 미국이 북한에 대해 노골적으로 법의 이름까지 빌려 ‘인권’을 말할 때 우리는 부득이하게 전쟁의 그림자를 떠올려야 한다. 이라크해방법은 5년 만에 침략전쟁으로 이어졌다. 빌미는 대량살상무기였지만 완벽한 사기로 드러났다. 그런데도 이 천인공노할 ‘범죄의 재구성’에 대해 분기탱천하는 자가 없다. 의당 그러려니 하는 것이다(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이것을 국제정치의 냉엄함이라고 읊조리며 강 건너 불쯤으로 치부하는 자들은 다음 순서가 북한이, 아니 한반도가 될 가능성이 이른바 북한인권법으로 배가되었음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의 전쟁시계는 5분 앞으로 당겨졌다.

상황이 이처럼 불길하게 돌아가고 있는 이때에 한나라당이 북한의 인권에 대해 쏟는 정성은 그야말로 눈물겨울 정도이다. 지난 8월 한나라당의 김문수 의원은 ‘인권없는 통일보다는 통일없는 인권을 택하겠다’는 다소 과격한(?) 발언까지 불사하며 인권에 대한 소신을 피력했다. 같은 자리에서 그는 자신의 소신을 ‘수구꼴통과 반통일분자로 매도하는 한심한 사회분위기’를 질타하기도 했다. 이해한다. 양자택일 이전에 인권도 통일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데에 동의한다. 그러나 지난 7월 당신과 33명의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연명으로 북한인권법안의 상원 통과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미국 의회로 서한을 보낸 것에 대해 말하자면 당신들은 전쟁불사론자이거나, 더 낫다고 해봐야 정신 나간 인간들이다. 이건 해도 너무한다. 현재의 한반도는 그 어느 때보다, 세계의 그 어느 지역보다 전쟁의 가능성이 농후한 지역임이 세계적으로 공인되어 있다. 전후사정, 특히 이라크의 선례로 보건대 전쟁이 발발한다면 미국이 시작하는 것이다. 북한인권법과 같은 도발적 법안에 대해 그것을 촉구하고 또 쌍수를 들어 환영한 당신들은 미국의 전쟁도발 가능성을 고무하고 거들고 있는 것이며, 인권이 아니라 전쟁을 고무한 것이다. 그렇게도 불바다 구경이 하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철부지 어린아이로 돌아가고 싶은 것인가.

열린우리당은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한나라당보다 낫다고 할 것인가. 언감생심이다. 이들은 한나라당의 수구꼴통들보다 더 위험한 집단이다. 노무현과 이들은 이라크해방법의 예고된 종장인 이라크 침략전쟁에 미국의 또 다른 푸들을 자청하며 3위권의 파병을 결행했다. 이들이 한 짓은 미국에 북한을 침공한다면 국군을 앞세울 수 있을 것이라는 끔찍한 판단에 힘을 실어준 것이며 한편으로 전쟁의 위기를 한층 고조시킨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모두 입을 모아 이렇게 말한다. “네 나라는 네가 지켜라.” 어금니를 꽉 물고 나는 대답한다. “그래,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xXXXXXXxxx아.”

유재현/ 소설가·<시하눅빌 스토리>

※http://stopwar.jinbo.net/의 게시판에 “xXXXXXXxxx”의 원래 말을 올려주세요. 맞히시는 분에게 이번 원고료의 절반을 드립니다(1분 이상일 경우는 10월17일 국제공동반전행동에 참가하셨던 분에게 우선권을 드립니다. 마감은 10월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