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카펜터가 작곡한 전자음악의 긴장감과 에드거 앨런 포의 현실과 꿈에 대한 언급, 동네 할아버지가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으스스한 이야기는 <안개>의 도입부를 그럴싸하게 장식한다. 그리고 태평양 연안의 작은 마을은 100주년 탄생일에 피의 하루와 마주하게 된다. 존 카펜터는 <할로윈>에 이어 만든 <안개>에서 칼날과 함께 안개가 주는 공포를 마련해놓았다. 그런데 안개와 호러에서 연상되는 신비한, 그래서 손을 뻗어 그 너머를 더듬고 싶은 분위기 같은 게 카펜터의 세계에 있을 리 없다. 안개는 피의 복수를 준비한 유령들을 몰고 다니는 매개체로 기능한다. 스멀거리면서 다가오는 공포에 이어 단칼에 벌어지는 살인의 냉정함은 곧바로 심장박동을 거칠게 만든다. 그 칼에 윤리가 없어 꺼림칙하지만, 존 카펜터는 이성적으로 풀 길 없는 죽음과 공포의 세상이 있다는 걸 매번 알려준다. 끔찍한 죽음과 초자연적인 현상의 결합은 물론, 엉성한 플롯과 거친 연기조차 간결한 주제와 충격효과에 어울린다. 흥미로운 건 ‘죄의 전이’ 부분이다. 마을을 세운 사람들이 편견과 탐욕, 종교 때문에 저지른 범죄가 현재와 연결되면서 느슨하나마 미국에 대한 상징으로 읽힌다. 얼마 전 죽은 재닛 리와 딸 제이미 리 커티스의 공연은 두 호러퀸의 만남치곤 싱겁다. 유니버설에서 최근 출시되는 DVD 중 일부는 유럽의 마스터로 제작되는 것 같다. 상영시간도 조금씩 짧으며, 영상의 선명도도 떨어진다. 그 탓에 2.35:1 화면비율의 아름다운 호러를 만드는 존 카펜터의 <안개>도 다소 빛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