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법은 국보(國寶)다.” 과연 대한민국이다. 이 세상에 인권을 침해하는 나라는 많아도, 그 짓을 “국보” 삼아 하는 나라도 있던가? 그 점에서 나의 조국은 독보적이다. 국제사회에서 폐지를 권하는 악법. 그 야만적 습속이 조국 대한민국에서는 영원무궁 보존해야 할 문화유산으로 등록된다. 오늘 버스 타고 남대문 옆을 지나다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국보(國保) 1호는 숭례문. 그럼 동대문은 긴조(緊措) 1호?
국보법 논란 덕에 요즘 느닷없이 학생운동에 새 바람이 불고 있다. 요즘 대학가 반정부 운동을 주도하는 것은 경로대학 총학생회. 얼마 전 비상시국선언을 하더니 앞으로 거리에 나와 직접 민중과 결합할 예정이라고 한다. 지도부가 쟁쟁하다. 80년 5월의 총리 신현확, 언론통폐합의 허문도, 땡전뉴스의 김원홍. 5공의 용사들이 80년 5월 전두환 장군처럼 구국의 일념으로 떨쳐일어선 것이다. 쿠데타 선동 발언으로 유명한 이화학당 김용서 학동이 거기에 빠질 수 없다.
내전을 방불케 하는 상황. 대중의 자생적 투쟁에 의식성을 부여하기 위해 <월간조선> 조갑제 사장이 연일 “전략과 전술, 그리고 지침”을 담은 팸플릿을 내보내고 있다. 남을 설득하려면 “스스로 이념무장, 사실무장이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월간조선> 같은 매체와 좋은 책으로써 공부해야 한다”. 아울러 거기에는 “행동이 따라야” 한다. 국민여론을 잡기 위해 “강연, 대화, 토론, 책 읽기, 밥 사주기, 공부하기, 대중 집회, 공연의 문예활동”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
한마디로 ‘학습하라, 선전하라, 조직하라’는 얘기. 이렇게 80년대 학생운동권에서 하던 것을 요즘은 우익들이 그대로 따라하고 있다. 그 팸플릿의 마지막에 재미있는 구절이 나온다. “합법적 저항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 합법적 저항의 길이 봉쇄된다면 (…) 마지막 수단으로 저항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조갑제 동지가 주창하는 게 무엇인가. 그 유명한 레닌주의 원칙, 즉 합법과 비합법의 배합의 원칙이다. 이런 거, 어디서 배웠을까?
학생 시절 옥살이까지 했던 <조선일보> 류근일씨. 40년 만에 운동의 전선으로 복귀했다. “좌파 통일전선”을 흉내내어 거기에 맞설 힘있는 “범자유민주 대안진영”을 창출하잔다. 안 하는 게 없다. 꼴에 반정부 운동이라고 할 짓은 다 한다. 심지어 국보법으로 탄압도 받는다. <월간조선> 조갑제 학동, 인터넷 대자보에 글 올려 노골적으로 내란과 쿠데타를 부추기다가 결국 국가보안법 제7조 l항 국가변란을 선동한 죄로 고발당했다. 코미디를 해라, 코미디를….
이것이 우익 386들, 즉 3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권력을 누리고 늙어서 60갑자(육갑)를 떠는 사람들이 요즘 하는 짓이다. 이 우익 장수무대에 이회창 옹(瓮)이 우정 출연했다. 국보법을 수호하는 성스런 싸움에 야당 의원들은 “의원직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가안보는 묵묵히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젊은이들에 의해 지켜지는 것. 그 젊은이들의 리스트에 이회창 옹의 두 아들만은 얌체같이 빠져 있다. 그렇게 걱정돼? 그럼 두 아들, 군대나 보낼 일이지.
저들의 운동권 흉내는 저들이 지배세력에서 저항세력으로 누추해졌음을 의미한다. 그 제스처의 격렬함은 그들이 처한 상황의 다급함을 보여줄 뿐이다. 저들의 “내전” 놀이는 피식 웃어넘기자. 국보법 논란은 그것을 깨끗이 폐지하는 순간 저절로 끝나게 되어 있다. 대체입법이나 형법보완은 불필요한 논란만 가중시킬 뿐. 안보에 대한 국민의 우려를 덜려면, 실제로 안보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공격적으로 제시해 나가라. 가령 안보에 관심이 남다른 층을 상대로 ‘국방헌금’을 신설한다든지….
진중권/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