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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안티조선’을 외친다!
2001-06-21

민중가수로 변신해 화제가 된 댄스그룹 Z.E.N

최근에 발매된 가장 충격적인 대중음악 앨범을 두개만 꼽으라면, 얼마 전부터 타이틀곡 <새>를 통해 이른바 엽기 열풍을 불러일으킨

싸이(PSY)의 첫 번째 앨범과 지난해

5월에 발매되었던 DJ

DOC의 <DOC Blues 5%>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싸이의 경우야 뭐 충분히 받아들이고 넘길 수

있는 정도의 충격이었지만, DJ DOC의

경우는 강도가 좀더 컸었다. 특히 큰 반향을 불러왔던 <포졸이>보다는 언론과 검열 그리고 인기에만 영합하는 다른 연예인들에 대한

욕설로 점철된 <L.I.E>가, 그 가사의 직설적인 면에 있어서는 훨씬 충격적이었다. <L.I.E>를

듣고나서 DJ DOC를 ‘수준 낮은

날나리 래퍼들’이라고 치부해왔던 것이 개인적인 편견이었음을 깨달았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여하튼 인기를 위해서는 스포츠지를 포함한 이른바 대중언론과의 관계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한국의 댄스그룹이, 욕설을 통해 극렬하게 그들을

비난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분명 놀라운 일이었을 것이다. 더욱이 ‘그래 써라 씹어라 날려대라 그 똑똑한 그 잘난 머리 펜 잘 굴려라’라며 그들과의

절연을 선언하는 DJ

DOC의 모습에서는, 음악을 듣는 이들로 하여금 묘한 전율과 쾌감을 동시에 느끼게 만드는 마력이 발견되기까지 했을 정도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음반을 계기로 DJ

DOC의 행보 자체가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인디 록그룹과 합동콘서트를 여는가

하면, TV 출연에 연연하지 않고 게릴라콘서트를 여는 그들의 모습에서, 서태지와는 또다른 차원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지켜가려는 젊은 대중음악인들의

건강한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DJ DOC만큼의

인기있는 그룹은 아니지만, 한때 주목을 끌었던 댄스그룹이 갑작스럽게 민중가수로 활동하고 나서서 주목을 끌고 있다. 그들의 이름은 Z.E.N.

지난해 8월 <EVE>라는 타이틀곡으로 가요계에 데뷔해, 순위프로의 중위권까지 올라가기도 했던 Z.E.N은 세명의 여성과 두명의

남성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혼성댄스그룹이었다. 그들이 민중가수의 길로 접어든 것은 지난 4월10일 대우자동차노조에 대한 정부의 폭력진압이 문제가

된 즈음. Z.E.N의 최근 음악을 인터넷을 통해 공개하고 있는 민중가요 작곡가 김호철씨는, “민중가요를 부르겠습니다. 그동안 여의도를 중심으로

한 소위 상업가요판에 신물이 났습니다”라며 찾아온 Z.E.N을 보고 스스로도 놀랐다고 한다.

그렇게 민중가요계에 발을 내디딘 Z.E.N이

처음 선보인 민중가요는 대우자동차사건을 노래한 <그날 그 자리에서>. ‘그날 그 자리에서 너희들은 개자식…’이라는 가사가 대변하듯,

당시 경찰의 폭력진압에 대해 Z.E.N은

거친 랩으로 욕설을 퍼부어 네티즌들에게 충격을 선사했다. 당연히 Z.E.N의

이런 변신은 화제로 떠올랐고, 몇몇 신문들이 ‘댄스그룹 젠, 운동권 가수로 변신하나’ 혹은 ‘인기댄스그룹 젠, 민중가수 변신’ 등의 제목으로

이를 기사화하기에 이르렀을 정도다. 그 기사들에 따르면 첫 앨범을 내기 전부터 광주 5·18묘역을 참배할 정도로 의식이 있었던 Z.E.N의

맴버들은, 첫 번째 앨범이 상업적으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것을 바탕으로 랩과 힙합의 기본인 사회비판으로 돌아가려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Z.E.N의 그런 시도를 그대로 믿는 이는 거의 없었다. 그저 상업적인 전략에서 나온 일회성 해프닝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5월1일 노동절을 기해 <아빠와 전태일>이라는 노래를 발표한데 이어, 5월 말에는 광주민주화운동을

노래한 <종이 비행기>를 연달아 발표하면서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Z.E.N의 이런 변신이 일시적이 아니라는 확신이

네티즌들 사이에서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한편에서는 당연히 Z.E.N의 그런 노래들에 분개하는 세력들도 생겨났다. 인터넷을 통해 배포되는

노래의 특성상 짧은 시간 내에 확산된 반면, 이에 대한 반대세력들의 무차별적인 비난도 막을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던 것.

그렇게 ‘민중가수’로서 서서히 다시 알려지게 된 Z.E.N이

얼마 전에는 ‘우리가 안티조선을 외쳐야 하는 이유’라는 글과 함께 조선일보 및 몇몇 수구언론을 비판하는 두곡의 노래를 공개해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노래와 함께 공개한 글에서 그들은 ‘식민지시대에서 군사독재정권에 이르기까지 반민중적, 반역사적 행위와 극우행각을 일삼아온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언론은 이제 언론권력화하여 우리가 반드시 무너뜨리고 가야 할 또다른 폭력이 되어버렸습니다’라고 자신들이 입장을 분명히 했다. 물론

가사가 다소 유아적이고 단선적이긴 하지만, <1등 신문>과 <날지 못하는 새>(부제: 좃선 닭타령)가 담고 있는 수구신문에

대한 비판은 과거 015B의 <제4부>와는

분명 차원이 다른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담기는 가사의 내용과 상관없이, 곡 자체는 그다지 잘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사실. 또한 이 노래들을 만들어 공개하는 이들이 과연 지난해

TV에 출연하던 Z.E.N의

모든 맴버들인지 아니면 그중 몇몇만 참여한 것인지도 공식적으로 파악할 길이 없다는 점도 여전히 의구심으로 남는다. 하지만 Z.E.N의

변신과정이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음악의 배급통로가 생겨남으로 해서 이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들이 벌어질 수 있음을 환기시켜주는 좋은 예가

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모쪼록 Z.E.N이

어떤 형식으로든 인터넷을 통해 데뷔한 민중가수로서의 활동을 성공적으로 계속하는 동시에, 비판의식이 강하게 담긴 성공적인 두 번째 앨범도 발매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철민/ 인터넷 칼럼니스트

▶ <노동의

소리> Z.E.N 코너

http://www.nodong.com/ch_culture/song/group/zen.htm

▶ Z.E.N의

1집 앨범 http://user.chollian.net/∼psj121/album/zen.htm

▶ 안티조선 사이트 <우리모두>

http://www.urimod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