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또 달고 다녔던 것은 술이었다. 술은 마실 때나 마시지 않을 때나 늘 입가에 어른거렸다. 취했을 때는 물론이고 다음날 오후까지도 술 냄새는 몸에서 떠나질 않았다. 하루의 일과를 끝낸 막노동자들처럼 알콜의 기운에 의지해 일의 피로를 견디는 습관이 영화제 끝날 때까지 계속됐다. 오전에 사무실에 나와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이 그날이 취재 아이템을 정하고 사방으로 흩어져 인터뷰를 하거나 취재거리를 긁어오면 저녁에는 기사작성을 한다. 편집 작업을 마칠 즈음인 새벽 1, 2시에는 서서히 목소리가 잠기는 것을 느낀다. 그때부터 일찍 끝난 기자들끼리 모여 포장마차에서 술잔을 기울이면 하나 둘 씩 일을 마친 기자들이 그 자리에 합류하면서 새벽 5시를 넘기는 게 보통이다. 머릿속에 지푸라기를 쑤셔 넣은 것 같은 기분으로 다음날 기듯이 여관을 나오면 그날 일정이 시작됐다.
그땐 힘들었어도 굳이 힘들다고 말하긴 싫었다. 잔치의 곁에서 그걸 기록하는 자들에겐 그 잔치의 흥도 상당부분 감염되기 마련이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대낮에 나온 몽유병자의 걸음걸이로 다가가 접한 대다수의 영화인 손님들은 에너지뿐만 아니라 곧잘 감동도 전해줬던 것이다. 부산 영화제에서 데일리를 만든다는 것은, 영화를 본다는 것으로부터 거의 완전하게 소외되는 경험이면서, 동시에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과 악수하고 대화를 나누며 때로는 친구가 되는 기막힌 나눔의 기쁨을 주기도 했던 것이다. 이곳 부산에서 나는 기타노 다케시, 가린 누그로호, 허우 샤오시엔, 최양일, 장이머우 등의 감독들을 만나 한 수 배울 수 있었다. 회사를 옮기고 데일리를 만들지 않는 지금, 나는 부산에 오면 술을 별로 마시지 않는다. 술은 아무래도 격한 노동과 사람들과의 휴식같은 만남이 교차하는 그 몽롱한 생활의 와중에 마셔야 맛있다. 술이 입맛에서 달아나자 흥도 사라졌지만 그래도 늘 부산에는 오게 된다. 영화를 보기 힘든 건 여전하지만 이곳에선 여전히 익숙한 감독의 신작을 만나 우정을 확인하는 기쁨, 또는 전혀 몰랐던 새로운 영화의 감독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게 우리가 소주 한 잔 하면서 이 부산영화제를 통해 쌓는 추억의 두께일 것이다.
김영진(영화평론가, 전 <씨네21>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