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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미래, 디지털 장편에서 보다(+영문)
2004-10-11

저예산 디지털 장편 <양아치 어조> <마이 제너레이션> <신성일의 행방불명>

적어도 영화세상에서 디지털은 아직 열등한 존재다. 40여년 전 프랑스 누벨바그에 경량화한 카메라가 그랬듯, 디지털이 영화세상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소리 높여 외쳐진 지 10년이 지났지만, 그것은 여전히 정규군 아닌 게릴라의 무기다.

디지털 영화 - 돈으로부터의 자유 선언

디지털에 관한 많은 말이 있었지만, 여전히 분명한 건 그것이 필름에 비할 수 없이 싸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은 너무 단순한 것이어서, 디지털의 방대한 갖가지 파급효과에 가려져 종종 간과된다. 유난히 돈이 많이 드는, 그래서 그로 인한 갖가지 구속을 내면화해야 하는 영화라는 분야에서 돈으로부터의 자유는 중요하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되는 3편의 디지털 장편 <마이 제너레이션><양아치 어조><신성일의 행방불명>은 그 자유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성취의 다양한 사례를 전시한다. 제작비는 일반 장편의 10분의1에도 못 미치지만, 충무로라는 시스템의 시험대를 경유하지 않은 미지의 젊은 감독들이 빚어낸 이 작품들에 한국영화의 미래가 있다.

디지털에 관한 기술주의적 담론의 과잉을 무색하게 만드는, 영화라는 매체를 향한 그들의 집착과 미학적 결기에서 그걸 느낄 수 있다. 디지털 영화는 디지털과 관련된 어떤 것으로서가 아니라 그냥 영화로 말해져야 한다고 이 영화들은 당당하게 말한다.

이들의 성장은 이제 막 시작일 뿐이다

이 영화들이 모두 넓은 의미의 성장영화 혹은 청춘영화의 외양이라는 점은 자연스럽다. 프랑스와 일본의 뉴웨이브가 그랬듯이, 성장영화와 청춘영화는 대개 새로운 물결의 장르적 거처였다. 이것은 그것의 창작자가 기성 장르의 관습적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운데다 서사의 원천을 자신의 삶으로부터 구하려는 젊은 예술가들이라는 점과 연관돼 있다. 그러나 위 세편은 성장이란 소재에서 출발해 각자 전혀 다른 길을 간다.

<양아치 어조>는 세 편중에서 전통적 서사에 가장 가깝다. 세 청년이 처한 상황은 고립과 곤궁이다. 풍요를 향한 그들의 욕망이 서사를 작동한다. 강북에 살던 그들이 위험하게도 풍요의 땅 강남으로 이주했을 때부터 실패는 예정돼 있었다. 왜냐하면 욕망은 결코 충족되지 않기 때문이다. 욕망은 언제나 헛발질한다. 강남으로 상징되는 욕망의 대상과 그들의 욕망은 결코 만날 수 없다.

이걸 처음부터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인물은 주인공 익수다. 익수는 돈을 벌기 위해 말 그대로 양아치 생활을 마다하지 않는 그러나 결국 실패하는 두 친구의 물질적 도우미이지만, 그 스스로는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는 종종 우두커니 방 안에 앉아있고 우리는 그의 의도를 듣지 못한다. 그는 멍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존재다. 두 친구는 좌절하고 익수는 멍하게 바라보다 그들과 함께 강북으로 귀환한다. <양아치 어조>는 청춘의 욕망과 그것의 반복된 좌절을 응시하는 체념적 시선이 교직된 드라마다. 성장은 여기서 반복된 그리고 예정된 실패다.

<마이 제너레이션>의 젊은 남녀 역시 곤경에 빠져있다. 그들은 궁핍하며, 세상은 그들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남자는 감독 지망생으로 설정되지만 카메라를 들고 있는 것 외에는 그 꿈을 향한 어떤 추구도 보여주지 않으며, 여자는 자기 육신을 지탱하는 것조차 힘겨워하는 철저히 무능한 인물이다. 놀랍게도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단 한번도 격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사랑은 위로가 되지 않으며, 생은 젊어서 늙어버렸다.

이 영화가 주는 감동은 이들의 한없는 무기력에 있다. 세상으로부터 자기를 밀어내는 그 무기력은 거의 절대적이어서 어떤 곤경도 그것만은 흔들 수 없다. 마지막 장면에서 남자가 카메라를 켜며 여자에게 우는 이유를 물었을 때, 여자는 “카메라 꺼, 그럼 얘기할 께”라고 말한다. 카메라로 세상과 소통하려는 의지마저 부인되는 이 장면에서 그 무기력은 감독 자신의 아득한 무기력으로 비약한다. <마이 제너레이션>의 청춘들은 절대적 무기력을 긍정하는 존재다. 성장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영화도 불가능할 것이다.

<신성일의 행방불명>은 괴이한 영화다. 고아원에 사는 소년 성일은 맹랑하게도 성자가 되려 한다. 그는 이렇게 기도한다. “우리에게 양식의 일용함을 용서하옵시고...” 먹고 싸는 짓은 짐승의 행위이므로 부인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먹기와 싸기는 은밀히 한 공간에서 이뤄져야 한다. 아이들은 침대 밑과 화장실에 숨어서 먹는다. 가장 뚱뚱한 성일이야말로 이 계율의 가장 철저한 신봉자다. 원장이 화장실 앞에서 밥 먹고 정사를 벌일 때, 그것을 본 아이들이 반란을 일으킬 때 그는 동조하지 않는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가 화장실에서 초코파이를 먹을 때, 천사가 된 엄마가 나타난다.

쉽게 해독되지 않는 상징들로 가득한 이 영화는, 성일이 고아원을 나가 거지 성자의 모습으로 세상을 떠도는 순간부터 장엄한 기운을 내뿜기 시작한다. 그가 구부정한 모습으로 더러운 하천가를 따라 어둠 속에 사라지는 마지막 장면에선 숭고미에 이른다. 동물(아기)이 인간(성인)이 되는 과정을 성장이라 부른다면, 이 영화는 성장 따위는 없다고 말한다. 그러니, 그를 부인한 신성일은 행방불명된다. 그리고 <김갑수의 운명>과 <심은하의 잠적>이 뒤따를 것이라고 엔딩 크레딧은 말한다. 성장담을 종교적 기표로 재구성하는 이 기이한 우화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허문영(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프로그래머)

Korean's Enfant Terrible: The Digital Film

Although there are many talks about going digital, one undeniable fact is that it is incomparably cheaper than film. Buried by innumerable digital spin-offs, this fact is often overlooked. Being free from financial burden is particularly important in the film industry where high production cost leads to internalization of various contraints.

Three digital features , , introduced in this year's PIFF illustrates various achievements that can be earned through this freedom. Production maybe be less than one tenth of an average feature film, but the future of Korean film lies with these young aspiring directors who did not go through the testing ground of Chungmooro.

It seems fitting that all these movies are, in broad sense, growth or youth films. Just as it was for the new wave of France and Japan, growth films and youth films have been a popular genre for new waves. This phenomenon is related to the fact that these creators are free from the conventional restrictions of existing genres, seeking the root of the narration from their life. However, starting from the theme of growth, these three works respectively lead a different path.

is closest to a traditional narration out of the three. Three young men face isolation and poverty. Their ambition for richness drives the narration. However, their desire always takes a false step. The character who seems to know this from the start is the hero, Ik-soo. He is the financial supporter to two of his friends who end up failing in the end despite their determination to make money even if it meant leading spoiled lives. Yet, Ik-soo never let his desire be known. He is a being that gazes at the world. Growth repeats itself here; a prearranged failure.

In the film , a couple in love is in trouble. Though the man dreams of being a film director, he doesn't try his best to achieve his dream but just holding the camera. The woman is also so incapable that she hardly can maintain her body. Surprisingly, the starrings of this film never express their emotion. Love can never be appreciated and life aged young.

The impression from this film is endless of incompetent. In the last scene, when the man turns on the camera and asks why the woman cries, the woman said, "turn off the camera, then I will tell you." Even the will to communicate with the world through the camera is denied. The incompetent in the film plays an active part of the director's dim incapacity. A couple in positively accepts the absolute incompetence in their life.

is a mysterious film. Sung IL wants to be a surname. Eating and excreting should be denied and have to be done in a private place. Children hide themselve eating food under the bed or at the restroom. The fattest Sung-IL is the one who the most believes in this rule.

Having hardly understandable symbols, this film begins to expose the impressive spirit as soon as Sung-IL leaves the orphanage and travels around the world as a surname.

And the ending credit states that the film and would follow up for the next. This mysterious story is just the beginning to reconduct the story of teenagers based on the religious standard.

영문번역=김미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