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BIFF Daily > 9회(2004) > 오늘의 인터뷰
<알리에게 보내는 편지>의 감독 클라라 로
2004-10-10

"이렇게 강렬한 문제의식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한 가족이 호주의 광활한 초원과 사막을 가로지른다. 지난 18개월동안 편지를 주고받았던 15세의 아프가니스탄 소년 알리를 만나기 위해서다. 그들은 알량한 신체적 안전 외에는 그 어떤 자유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이 낯선 소년을 가족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호주 당국은 갖가지 규제를 들이밀어 이를 가로막았고, 새로운 가족의 얼굴이라도 보기 위해 이들은 기꺼이 여행길에 올랐다. 얼핏 평범해 보이는 이들의 여행은 이제 클라라 로의 시각을 통해 서구의 민주제도가 지닌 엄청난 모순을 폭로하게 될 것이다. 마카오에서 태어나 홍콩에서 자랐으며, 영국에서 영화를 공부한 뒤 호주에 정착한 중국계 감독 클라라 로는 이미 10편의 극영화를 완성했고, 이 영화들은 로테르담, 베니스를 비롯한 수많은 세계 영화제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클라라 로는 자신의 11번째 필모를 첫번째 다큐멘터리로 채우게 된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고 전한다.

-이른바 민주국가라고 불리는 호주의 비인간적인 난민제도의 문제점을 드러내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다고 영화 속에서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어떤 문제에 대해 분노하는 것과 실제로 영화화를 결심하는 것 사이에는 커다란 결심이 필요하지 않나.

=감독들은 언제나 사회적 책임감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비단 감독이 아니더라도 하나의 입장을 가진 인간이라면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문제에 대해 발언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음악가라면 노래를 만들 것이고, 작가라면 글을 쓸 것이다. 내 직업은 영화감독이고, 그런 내가 영화를 만드는 것은 당연하지 않나. 그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뭔가가 문제라고 생각한 것이 처음이라는 말인가?

=그처럼 강렬하게 문제의식을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그것은 상식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합법을 가장하고 일어났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해졌을까를 고민하다가 이 이슈가 서구의 민주주의 자체의 문제임을 깨달았다.

-극영화만을 만들어왔던 당신이 다큐멘터리로 이 문제를 다루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극영화의 경우 시나리오를 쓰고 제작비를 모으기까지는 적어도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알리를 비롯한 많은 난민들이 당시에 겪고 있던 문제는 급박스럽게 돌아가고 있었다. 일단 문제라고 생각한 이상, 어떻게든 카메라를 들어야만 했다. 게다가 섣불리 결과를 짐작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다큐멘터리가 적당하지 않나. 물론 후반작업을 진행하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일들이 벌어졌고, 그 모든 상황을 정리해서 이 작품에 담는 것은 불가능했다.

-첫 다큐 작업의 어려움은 없었나

=전혀 없었다. 내가 흥미롭게 느낀 것을 뭐든 찍을 수 있었고, 찍은 것을 편집하여 영화화할 수 있었다. 일어나는 일들을 다시 영화에 반영할 수도 있었고, 그것은 극영화에서는 하지 못하던 일이었다. 정말로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극영화를 만들 때도 즉흥적인 것을 많이 반영하는 편인가?

=꼭 그런 건 아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준비해놓고 들어가면 즉각적으로 발생하는 상황에 반응할 수밖에 없으므로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일반적인 다큐멘터리의 범주에는 들어갈 수 없는 스타일이다. 언제 스타일을 결정했나

=이것을 시작할 때는 아무것도 정해놓지 않았다. 그냥 이 가족의 여행을 따라가기로 했고, 그 때 유일하게 결정한 것은 호주 이민자의 시각을 견지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행에서 돌아와 촬영한 것을 가지고 하나의 영상물로 만들려 하다보니 일반적인 다큐멘터리의 형식으로는 불가능함을 깨달았다. 후반작업 기간 내내 매일매일 새롭게 구성해야했다.

-서정적인 음악, 지극히 개인적인 내레이션, 내레이터와는 또다른 입장을 반영하는 자막 등이 모여서 지극히 개인적인 영상에세이가 완성됐다.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 감정적으로 접근하는 형식이 인상적이다.

=내 파트너이자 남편인 에디는 나에게 좌뇌보다는 우뇌를 사용하라고 조언했다. 사실 난 처음부터 이 문제에 대해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있었다.

-가족들을 계속 만나고 있나

=그렇다. 그들은 우리 집에서 차로 45분 정도만 가면 되는 교외에 살고 있다. 나와 에디는 그곳에 가서 식사도 하고 차도 마시면서 휴식을 취하다 오곤 한다.

-함께 살고 있는 알리와 그 가족의 관계는 어떤 변화가 없나.

=물론 굴곡은 있다. 그렇지만 평범한 가족들도 서로 가까이 지내다보면 갈등들이 있기 마련 아닌가. 하지만 그런 일들은 결국 사람을 깊이 알게 되면 생길 수밖에 없다.

-현재 국적이 호주로 되어 있다. 호주에서 정착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먼저 호주에 정착한 부모님들을 만날 겸, 일에 매달리던 나에게 재충전의 시간을 줄 겸 그곳을 방문했다. 호주는 중국으로의 반환을 앞둔 혼란스런 홍콩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넓고 쾌적한 곳이었고, 나는 호주의 후반작업 시스템이 홍콩보다 훌륭하다는 걸 곧 알게됐다. 결국 작업의 용이성이 가장 큰 이유가 된 셈이다.

글=오정연 사진=손홍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