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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 리본>을 보러가는 내 마음도 핑크빛!
2004-10-10

우연찮게, 초등학교 시절. 내가 처음으로 접한 포르노는 라는 미국영화였다. 보고 또 보았던, 아마도 내 인생 가장 많이 관람한 영화로 기록될, 그 테잎이 늘어지다 못해 거의 끊어질 때가 될 무렵. 아지랑이 피어나는 봄이 도래했고, 나는 곧 중학생이 되었다. 말로만 듣던 중학교는 역시 초등학교와는 달리 넓은 세상이었다. 그곳에는 수많은 포르노가 있었다. 더이상 나는 테잎 하나를 닳도록 보지 않아도 되었다. 유난히 정많고 남을 특별히 아낄줄 아는 나의 학우들은 '아나바다' 정신이 투철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줄기차게 수많은 작품들을 '아껴보고 나눠보고 바꿔보고 다시 보았다'. 심지어 잘 모르는 친구들과도 그것때문에 친분이 생기기도 했다. (당시 우린 그런 친구를 '포르노 친구'라 불렀다). 그러던 어느날.

중학교 1학년 2학기 무렵. 나는 드디어, 일본의 포르노를 접하게 된다. 달랐다. 단지 그냥 '다른' 정도가 아니라, 그저 배우들의 눈동자와 피부색이 다른 그런 정도가 아니라, 그러니까 그것은, 처음 포르노라는 것을 접했을 때 받았던 태초의 충격과도 비견될만한, 완전히 다른, 진짜 새로움. 오오, 전혀 다른. 오오오, 완벽한 새로움이었다.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양의 포르노와 일본을 중심으로한 동양의 포르노는 그 문화적 차이 만큼이나 극명한 제 색을 띈다. 전자가 심하게 과장된 신음소리 - 아니, '신음'이라기 보다는 어떠한 구체적 행위를 지칭하거나 요구하는 직접적인 대사 - 와 공격적인 체력을 전시하는 소위 '연극적인 방식'이라면, 일본을 중심으로한 동양의 그것은 가는 숨의 떨림, 촉촉하고 발갛게 달뜬 두 뺨에의 클로즈업, 오밀조밀 수줍은 움직임의 내밀한 관찰 따위에 보다 관심을 보이는, 훨씬 '영화적인 방식'이었다. 당시 사춘기 소년이었던 내게 있어 그 차이는, 말하자면, '영화가 진정성을 갖느냐 갖지 않느냐'의 의미였다. 아아, 진정성이 느껴지는 포르노라니. 당시 내게 그건 너무도 뜨겁고 매콤하여서, 흠뻑 탐닉하지 않고는 도무지 버틸 수가 없는 큰 이유가 되어주었다.

<핑크 리본>은 일본 핑크 무비 산업의 안팎을 두루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라고 한다. 그 옛날 내겐 너무 뜨거웠던, 그 진정성 넘쳐'보였'던 세계와의 우연찮은 조우가 무엇보다 반갑다. 내 하이틴 판타지의 왕국은 어떻게 만들어져왔고 지금은 어떤 시장을 상대로 어떻게 변모하였을까. 이 영화를 기대하는 내 마음은, 진짜다. 핑크빛이다.

이해영(시나리오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