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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라무> Delamu
2004-10-10

중국, 2004, 감독 티엔 주앙주앙, 오전 11시, 부산3

그곳에는 여섯 가지 언어를 사용하는 열다섯 가족이 유지되는 나름의 질서가 있고, 지나간 사랑을 애써 부인하는 젊은 라마승의 쓸쓸함이 있다. 이들이 터잡고 살아가는 곳은 사람 한 명, 혹은 노새 한마리가 겨우 지나갈만한 계곡, 언제 산사태를 만날지 모르는 길을 따라가면 나타나는 중국과 티베트의 접경지역. 이곳에서 부지런한 사람은 잘 살고 게으른 사람이 가난해지는 것이 당연하던 시절을 회상하는 104살 노파는 삶이 준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고, 종교의 자유가 없던 시절 감옥에 들어간 자신을 기다려준 부인을 회상하는 늙은 목사는 이제는 편하게 죽을 수 있다고 담담하게 읊조린다.

촬영감독 출신 제5세대 감독 티엔주앙주앙이 구성한 인터뷰들은 얼핏 사실적으로 보이지만, 프레임 안에서 정교하게 통제된 빛과 세심하게 계산된 편집에서는 그냥 넘겨버릴 수 없는 내공이 느껴진다. 인터뷰 사이사이를 잇는 것은 이 정적인 다큐멘터리를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스펙터클. 지평선 위를 줄지어 걷는 보부상의 행렬과 병풍 같은 산, 그리고 고즈넉한 마을에 노을지는 풍경 등이 그것이다. 광활한 자연이 아름다울수록 그 대지에 기대어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은 하찮게 느껴지지만, 그들의 억센 하루하루가 결국은 장대한 역사를 완성한다고, 영화는 우리에게 말한다. 두시간 가까운 러닝타임을 통해 관객들은 자연과 인간, 개인과 역사가 포개지는 순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제목인 더라무는 순박한 가장의 인터뷰에서 딴 것이다. 그는 자신이 기르던 노새의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그 슬픔을 감추고 애써 그로 인한 경제적 손실만을 이야기한다. 그에게 남은 세 마리 노새 중 한 마리의 이름인 더라무는, 티벳어로 ‘온화한 천사’를 의미한다.

오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