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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쥬케이터> The Edukators
2004-10-09

독일, 2004, 감독 한스 바인가르트너, 오전 11시 메가박스 5관 

다큐멘터리의 질감으로 시작되지만 픽션이라는 게 금방 드러난다. 복면 쓴 누군가 고급 저택에 침입해 집안의 온갖 물건들을 멋대로 재배치한다. 그게 마치 설치미술 같아서 약간 예술적인 느낌마저 준다. 작품에는 작가의 사인이 필요하다. “돈이 너무 많은 자본주의 돼지들”에게 이대로는 안된다는 경고의 메시지가 그 인장을 대신한다.침입자들의 사연과 ‘행위예술’을 꽤 오래도록 지켜봐야하는데 다소 지리하다. 혁명을 꿈꾸는 젊은이 얀(다니엘 브륄)과 페터의 입에서 노예, 억압, 착취 등의 단어가 쏟아져 나오는 것도 어쩐지 낯설다.

하지만 머지않아 깜짝쇼가 벌어진다. 페터의 여자친구가 가세한 이들의 작업 현장을 목격한 한 부르주아를 본의 아니게 깊은 산속으로 납치하게 되면서부터다. 갑자기, 그 부르주아가 젊은이들의 이상을 진심으로 이해하겠다며 맘좋은 아저씨가 된다. 자신이 68혁명 당시 독일 지도부의 일원이었고, 지금의 아내는 함께 코뮌을 이루고 그 속에서 성(性)까지 공유했던 동지였다며. “세상을 구하기 전에 자기 자신부터 구원해야 한다는 걸 깨달은” 옛 혁명가와 젊은이들은 외부로 향했던 혁명을 내부의 과제로 돌리며 평화로운 화해를 향해간다. 그렇지만 영화는 변절한 68세대에 단호하다. 그들에게 단절을 선언하는 솜씨는 초반의 기계적 시선이 만든 결점을 메우고도 남는다. 무엇보다 68세대에 비견될 법한 우리의 세대가 시스템의 힘이 된 작금의 상황과 영화의 맥락이 맞아떨어진다.

70년생인 한스 바인가르트너 감독은 90년대 중반까지 의학공부를 했고 신경전문의로 일했던 이력을 갖고 있다. 독일영화로선 7년 만에 올해 칸 경쟁에 초청받았을 때, 그는 “첫 번째 주제는 나의 세대다. 우리는 어디에 우리의 혁명에 대한 열정을 쏟아야 할지, 어떻게 시스템을 공격해야 할지 모른다. 시스템은 난공불락이니까”라고 말했다. 늘 그렇듯 희망은 우회적으로 다가온다. 스크린에서 젊은이들이 벽에 써놓고 떠난 “어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절망스럽기도 하지만 낙관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얀과 같은 젊은이가 끝내 변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독일에서 정상의 인기를 얻고 있고, <굿바이 레닌>으로 우리에게 낯을 익힌 다니엘 브륄이 얀 역을 맡아 단호하면서도 불안한 눈빛의 비폭력적 혁명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