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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는 살아있다고?
2001-06-21

TV의 한계를 보여준 컨페더레이션스컵 중계방송

모든 스포츠가 굳이 현장에 나가야 만끽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야구가 그렇다. 시속 150km가 넘는 강속구를 외야석에서 볼 때는 그 실감이

반으로 줄지만 TV로 시청할 때는 공 하나의 심리적 면면까지 핥는 묘미가 있다. 하일성 해설위원에 대한 호평의 절반은 그가 공 하나에 실리는

투수와 타자의 심리전을 절묘한 입담으로 풀어내기 때문이다. 축구라면 어떨까. 오늘날 축구장은 무려 20여대의 카메라가 구석구석을 훑는다. 그러나

한계가 있다. 물론 이는 미디어 탓이 아니라 축구의 본질 때문이다. 사실 축구중계는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현장의 아드레날린의 수치를 따라잡을

수 없다.

축구, 드라마가 있는 원시적 스포츠

축구는 단순하다. 가장 복잡한 룰이라고 해봐야 오프사이드뿐이다. 스리 세컨드 바이얼레이션(농구)이나 인필드 플라이 아웃(야구)처럼 숙지해야

할 규칙이 수십 가지인 스포츠는 그것을 바탕으로 오밀조밀한 전술이 펼쳐지기 때문에 해설의 영역이 크다. 그러나 축구는 한눈에 상황 인식이 가능하다.

“반대편 공간으로 줬어야 해요” 정도인데 이는 그 순간 TV를 시청하는 전국 방방곡곡의 시청자들이 욕설을 동반하면서 내뱉는 소리다. 3-5-2에

4-4-2 역시 시청자들은 막상 경기가 시작하면 세금고지서와 더불어 금세 잊어버리는 용어다. 룰이 복잡한 야구의 경우 관람하던 연인들이 “새대가리”,

“잘났어 정말” 따위를 주고받으며 헤어지는 수가 더러 있지만 축구는 차고 달리면 그뿐이다.

축구는 원시적 야만성, 수렵 시절의 공격성을 환기시킨다. 문명화가 곧 ‘관리되는 사회에 길들여지기’라고 한다면 축구는 길들여지지 않는 원시적인

스포츠다. 탁구, 테니스처럼 상대 진영을 넘어간다고 반칙인 것도 아니요 야구, 골프처럼 실제 경기시간보다 쉬고 작전짜는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니요

농구처럼 200점이 넘는 경기도 아니다. 상대 진영을 맘껏 유린하여 불과 한두점을 획득하는 게 축구다.

또한 축구는 내러티브의 스포츠다. 장 클로드 반담이나 돌프 룬드그렌의 영화가 전혀 폭력적이지 않은 것은 그들이 시작부터 때리고 부수기 때문이다.

드라마가 없다. 그에 비해 <차이나타운>에서 잭 니콜슨이 페이 더너웨이의 뺨을 때리는 순간은 얼마나 끔찍한가. 축구는 전·후반 90분

내내 ‘쉬지 않고’ 뛰어다니는 경기이며 골 하나가 터질 경우 그것은 내러티브의 절정이 된다. 거기에 우연과 불운까지 겹친다면 축구선수들의 골

세리머니가 왜 그토록 광기어린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문명화가 우리를 어떤 식으로든 길들이고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피할 수 없는 계약이라면

우리는 주말의 한 순간, 적어도 1년 중 며칠은 그 어떤 문명도 간섭하지 않는 야만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넣을 준비가 되어 있다. 그 대상이

축구인데 바로 이 점이 TV에는 피할 수 없는 한계다.

같은 경기, 너무나 달랐던 해설

이번 컨페드컵에서는 차범근과 허정무의 입심 대결이 화제가 되었다. 과연 누가 더 해설을 잘할 것인가. 물론 이는 우리 축구의

비극이다. 둘 중 한 사람은 벤치의 조련사였어야 좋았다. 시청률 경쟁의 해설자란 그들의 생애에 비춰볼 때 소포클레스적인 비극의 순간이다. 어쨌거나

두 사람의 마이크 시합은 현상적으로는 허 감독의 근소한 승리로 나타났다. 첫 경기인 한국 대 프랑스 전은 허 감독의 승리, 시청률 조사기관인

AC닐슨(9.0% 대 6.7%)과 TNS미디어(9.3% 대 7.1%) 조사에서 모두 KBS가 앞섰다. 두 번째 멕시코와의 경기는 차 감독의

승리, AC닐슨(16.1% 대 13.9%)과 TNS미디어(15.6% 대 12.8%) 조사에서 MBC가 역전승. 그뒤 몇번 엎치락뒤치락 한 뒤

마지막 결승전에서는 KBS의 허 감독이 AC닐슨(26% 대 24%)과 TNS미디어 조사(17.9% 대 15.5%) 모두에서 시청률이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이는 현상일 뿐이다. 전통적으로 KBS에 호감을 갖는 장년층과 지방 시청자를 고려해야 한다는 분석도 있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축구가

갖는 단순성과 원시성을 고려할 때 차 감독이 좀더 생생했다는 게 중평이다. 마치 그 자신이 그라운드에서 뛰고 있는 듯, 특히 멕시코와 호주전

중계에서 심장이 파열할 듯한 감격적 어조를 구사한 차 감독이 초기의 어눌한 어투로 저조했던 시청률과 선호도를 만회했다는 분석이다. “아, 유상철,

멋쟁이에요”, “황선호호옹, 저건 아무나 찰 수 있는 슛이 아니에요”. 심지어는 호주가 물밀 듯이 공격하자 “아아아”, 이를 우리 팀이 가로채자

“오오오”, 다시 호주가 빼앗아 골문을 위협하자 “아아아, 엇” 하는 대목에서마저도 일부 팬들은 흥분했다. 차 감독이 감탄사만 남발한 것은

아니다. 프랑스와의 개막전, 시작 9분 만에 차 감독은 고종수의 몸놀림에 이상이 있다는 점을 지적했는데 이는 오랜 실전이 선사한 놀라운 감각이다.

그렇다고 허 감독이 지루했다는 게 아니다. 다만 흥분하지 않았을 뿐이며 작은 시퀀스가 마무리될 때마다 치밀한 분석을 들려주었다. 이에 대해서도

열혈남아들은 찬반이 나뉘는데 허 감독은 너무 비판적이었고 차 감독은 지나치게 격려성 멘트가 많았다는 점이다. 물론 차 감독의 지론은, 어느

일간지 칼럼에 밝힌 것처럼 “밤새 고민한 감독의 전술을 공격하려면 상대 역시 그만한 노력을 해야” 하며 기자와 해설자들이 감독과 전쟁할 때는

“반드시 축구를 위한 것으로 국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원칙 때문인지 차 감독은 내내 격려성 멘트였고 허 감독은 분석적이고 때로 비판적이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차 감독을 좀더 호평한 셈인데, 사실 그렇다. 남의 나라 경기인 프랑스 대 일본의 결승전에서 전반 25분경 프랑스가 선취

득점을 할 때 두 해설자는 판이한 분위기였다. 허 감독이 어떻게 득점했는가를 분석하고 있을 때 차 감독은 자신이 득점한 것처럼 시청자를 흥분시켰다.

물론 안정적인 수비를 강조하는 차 감독이 프랑스 수비수들이 볼을 돌릴 때는 적절히 체력 안배를 해야 한다고 지적한 것과 2선 압박수비를 강조하는

허 감독이 좀더 강한 프레싱을 강조한 것은 두 사람의 스타일문제이므로 평가의 논외가 된다.

MBC가 좀더 생생했다고 했지만 서기철 대 최창섭 캐스터의 대결은 압도적으로 서기철의 우위였으며 더욱이 주관방송사 MBC의 리플레이와 터치스크린은

열기를 오히려 식힐 뿐이었다. 슬로모션은 정지화면을 보듯 감질났고 터치스크린의 화살표는 패스 방향과 슛 타이핑을 반복하는 것이어서 실감이 떨어졌다.

농구의 박스아웃이라면 터치스크린식 해설이 긴요하겠지만 축구의 시청자들은 리플레이 도중에도 진행되는 그뒤 상황이 더 궁금하다.

황선홍은 왜 최고의 스트라이커인가

두 방송사 모두 결정적인 한계는 선수 개개인에 대한 치밀한 분석이 결여됐다는 점이다. 외국인 선수는 이름마저 서로 다르게

부를 정도였고 우리 선수에 대한 분석 역시 수치를 단순히 읽는 정도였다. 그 수치가 지닌 의미와 선수의 경기능력 사이클까지, 해설이 아닌 해석을

해야 옳았다. 이를테면 황선홍 선수가 왜 최고의 스트라이커인가. A매치 89경기 출장에 47골 기록을 그저 조릴 뿐인데 이를 다른 공격수와

비교하려면 경기당 골 획득 비율로 분석했어야 공정하다. 이럴 경우 황선홍은 47(골)/89(경기 수)=0.53골이 되고 최용수는 25/52=0.48,

김도훈 19/56=0.34, 설기현 7/24=0.29, 안정환 2/13=0.15이 된다. 이렇게 해석할 경우 황선홍은 10년 넘게 뛰었기 때문에

부동의 스트라이커가 아니라 경기당 골 획득 비율로도 다른 선수를 앞서기 때문에 대표적인 공격수가 되는 것이다.

황선홍 얘기가 나온 김에 덧붙이는 것이지만, 축구의 원시적 공격성이 TV중계의 한계라고 말했는데 그것은 황선홍을 움직임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는

대목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이번 컨페드컵에서 화려하게 부활한 황새 황선홍. 차 감독이 해설 도중 “공간을 뛸 수 있는 선수는 저 선수뿐”이라고

말했듯이 황선홍은 붙박이 스트라이커가 아니라 공간을 창조하고 대각선으로 질주하는 감각적인 플레이어다. 그런데 카메라는 어쩔 수 없이 공이 있는

지역만 비추게 마련이다. 수비 진영에서 볼을 좌우로 돌릴 때는 카메라와 캐스터 역시 그 흐름만 중계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순간 공격수들은,

그러니까 황선홍, 스즈키, 아넬카 등이 패스만 기다리면서 걷고 있는 게 아니다. 상대 수비수와 공간 장악을 위해 몸싸움을 하고 그러다 문득

먹잇감을 발견한 듯 텅 빈 공간으로 질주하는 것이다. 간발의 차이로 상대 수비수를 따돌리는 모습을 보고 홍명보, 나카다, 비에이라가 회심의

대각선 패스를 날려주는 것이다. 캐스터와 해설자는 화면 밖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해줬어야 했다.

아니, 그것은 TV 중계의 어쩔 수 없는 한계다. 그러니 맨 앞에서 말한 것처럼 축구는 그 현장에 가서 관람해야 한다. 허 감독의 당숙에 차

감독의 고모부가 해설을 해도 현장의 치열함과 공간의 미학을 만끽할 수는 없다. 집단적 국위선양은 나중문제다. 축구의 미학, 그 육박전의 리얼리티에

전율하는 방법은 경기장에 가는 수밖에 없다.정윤수/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