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이 된 나는 그 사이 그녀에 대한 얘기 몇 가지를 들을 수 있었는데, 그 몇 가지 얘기는 친구와 친구를 거치면서 더욱 과장되고, 정교해졌다. 남자를 만났고. 남자따라 가출을 했고. 남자따라 가출했으니 동거하고. 남자따라 가출하고 동거하니 학교를 그만뒀다는. 얘기는 결국 그녀가 약에 손을 댔다는 이야기로 정리되었다. ‘그녀가 따라갔다는 그 남자는 그녀의 손톱뿐만 아니라 손, 아니 어쩌면 팔까지도 잡아봤겠지...’ 그런 바보같은 생각으로 괴로워하던 어느 날 전화벨소리와 함께 그녀는 내게로 왔다. 다시 만난 그녀는 소문이 반쯤은 사실이고, 반쯤은 거짓일 것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얀 얼굴에 검은 눈은 여전했다, 내게는. 우리는 별 말없이 술을 마셨고. 그 날, 난생 처음 여관이란 곳에서 난생 처음 섹스란 것을 했다. 그리고 같은 날, 그녀는 내게 69체위를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녀와의 마지막이 되었다.
여전히. 그녀의 손은 둘째치고, 손톱조차도 잡아주지 못한 채. 몇 년 후. 무라카미류의 을 주저없이 집어 든 건 순전히 제목 때문이었다. 안다. 그 69가 그 69가 아닌 걸. 이유는 알 수 없다. 앞으로도 69년이든, 69세든, 69만원이든.... 제목이 69면 주저하지 않으련다. 따라서 역시. 전혀 주저함 없는 오늘의 선택은 무라카미류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이상일 감독의 이다.
이해영(시나리오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