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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고 싶을 때> Head On
2004-10-08

감독 파티 아킨/ 독일/ 2003년 /120분

<미치고 싶을 때>는 몇가지 이야기와 감정이 뒤섞여있는 영화다. 거칠고 어두운 코미디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파괴적인 사랑과 절망을 거쳐 쓸쓸한 결말까지, 몇 번이고 코너를 돌면서, 바로 조금 전과는 다른 풍경을 가진 길목에 가닿는다. 스무살 터키 처녀 시벨은 보수적인 가족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어서 자살을 시도한다.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그녀는 술마시고 자동차로 벽을 들이받은 중년남자 카힛을 만나고, 그에게 결혼해달라고 조른다. 카힛은 아내가 죽은 뒤에 부랑아나 다름없이 살고 있는 터키 남자. 카힛은 죽어버리겠다는 협박에 못이겨 시벨과 결혼하지만, 처음 마음과는 다르게, 천진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자유를 얻기 위한 도구로만 카힛을 대했던 시벨도 그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나 바로 그날밤, 카힛은 말다툼 끝에 시벨의 남자친구를 죽이고 만다.

터키계 감독과 배우가 만든 <미치고 싶을 때>는 경쟁부문 선정에서 한번 탈락한 전적이 있는데도 올해 베를린 영화제 금곰상을 수상하는 이변을 낳았다. 추락한 남자가 내뱉는 기묘한 유머, 감옥에 갇힌 남자와 혼자서라도 살아가야만 하는 여자의 고독, 변하지는 않았어도 더이상 이어갈 수는 없는 사랑이 몸을 섞은 영화. 서른살 젊은 감독 파티 아킨은 이미 여러번 이민 노동자 문제를 다룬 적이 있었고, 터키계 리얼리즘 영화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그는 애초 코미디로 생각했던 이 영화에 패치워크처럼 다양한 문양을 누벼넣어 “사랑과 죽음과 악마의 삼중주”로 이끌어갔다. 자신이 좋아하는 펑크음악처럼 내지르는 듯하다가도, 끈질기게 재회하고만 연인을 온전한 침묵 속에 내버려둘 줄 아는, 스스로 길을 발견해 내는 듯한 영화로. 그리고 옛연인의 전설을 노래하는 터키 악단은 그다음 대목을 예고하는 안내자이고 영화의 틈새를 메우는 접착제이다. 노래와 이야기가 하나로 뒤엉키면서, 이별을 향해가는 <미치고 싶을 때>는, 냉혹한 현실을 발견하고 사랑을 냉소한다.

주연 비롤 위넬과 시벨 키켈레는 사랑 때문에 구원을 얻고 다음 순간 파괴에 이르기도 하는 굴곡 심한 연인으로 부족함이 없다. 감독이 쇼핑몰에서 발견한 시벨 키켈레는 포르노 영화에 출연했던 전력 때문에 구설수에 휘말리기도 한 배우. 그러나 그녀는 자유만을 원하는 철없는 처녀에서 진창으로 굴러떨어진 외로운 여인으로, 침착한 눈빛을 가진 아내이자 어머니로, 영화와 함께 숨가쁘게 변해가며 밀착된 연기를 보여주었다.

김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