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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의 기운이 이제 인도네시아로 몰려가고 있다
2004-10-08

단편영화의 약진에 힘입어 다양성의 시대에 접어들어

지난 90년대 중반 금융위기의 피해를 가장 크게 본 아시아의 국가들인 한국과 태국, 인도네시아의 영화가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눈부신 성장을 이룩하였거나, 발전의 가능성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아직 한국이나 태국처럼 자국영화의 시장점유율도 높지 못하고, 전반적인 영화산업의 성장속도가 더디기는 하지만 가린 누그로호 이후 새로운 세대의 등장으로 희망의 조짐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인도네시아의 영화평론가 세노 구미라 아지다르마가 언급하였듯이 90년대의 인도네시아영화는 ‘침묵의 시기’였고, 그것은 산업적으로는 제작 편수의 급격한 감소와 관객수의 급감, 미학적으로는 저급한 수준의 상업영화(가린을 제외한)가 주류를 이루던 시기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이전부터 대안영화의 성격을 지닌 소위 ‘게릴라영화’의 전통이 가린 누그르호의 출현을 낳았고, 기존의 인도네시아 영화계의 낡은 관행을 타파하면서(특히 젊은 영화인에게 커다란 장애요소였던 진입장벽의 타파) 자신의 예술세계를 구축한 가린의 활약은 젊은 세대들에게 하나의 귀감이 되었다. 그리고, 이후 등장한 젊은 세대들, 즉 미라 레스마나, 난 아크나스, 리리 리자, 리잘 만토바니, 샨티 하마인, 니아 디나타, 루디 소자르워 등과 같은 젊은 제작자, 감독들은 인도네시아 영화산업의 지형도를 바꾸기 시작하였다. 이들의 활약은 소위 ‘디지털세대’의 부상에도 영향을 미쳤다. 가린 이후 젊은 세대에서 이들 ‘디지털세대’에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에서 중요한 특징은 ‘여성파워’와 ‘단편영화의 붐’이다.

여성과 젊은 세대가 성장을 견인하다

현재 가장 핵심적인 제작자로 활동중인 미라 레스마나, 샨티 하마인을 비롯하여 난 아크나스, 니아 디나타 등과 같은 주목할만한 감독들이 모두 여성이며, 단편영화 제작과 배급, 그리고 저변 확대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틴틴 울리아, 룰루 라트나 등도 여성이다. 그런가 하면, 콘피덴(Konfiden)과 미니키노(Minikino), 벰베(Boemboe), 그리고 이카지(IKJ, 자카르타 예술학교) 등을 중심으로 한 단편영화제작 그룹과 교육기관에는 많은 영화학도들이 몰려들고 있다. 이들의 활동은 점차 그 범위를 확장해 나가고 있으며, 특히 올해에 그 가시적 성과물들이 줄을 잇고 있다. 라비 바르와니, 아리아 쿠스마데와, 파오잔 리잘, 하니 사푸트라, 하눙 브라만티요 등이 중,장편 신작을 발표하면서 그들의 재능을 선보이게 된다. 인도네시아 영화가 이제 ‘다양성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것이다. ‘다양성의 시대’의 의미는 다양한 스타일의 감독의 등장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다양한 주제와 형식의 영화의 등장이라는 의미도 있다. 가린은 인도네시아 의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에서 이제는 그동안 금기시 되어 왔던 정치적 사건과 현재의 척박한 사회현실에 대해서도 과감하게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며, 리리 리자 역시 신작 <기에>를 통하여 정치/인종문제에 도전한다. 니아 디나타 역시 <아리산>에서 게이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면서 사회적 금기에 도전했다.

풍부한 문화적 다양성이 밑걸음

미라 레스마나와 샨티 하마인은 인도네시아영화산업의 기반을 다지는 데에 있어 중추적 역할을 계속 담당할 것이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 간 지속되어 왔던 거대 회사의 배급과 상영의 지배적 틀은 미라나 샨티의 제작자로서의 뛰어난 역량에도 불구하고 해체하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그들의 독점적 지배력이 더욱 강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향후 빠른 시간내에 인도네시아 영화산업의 급격한 변화나 성장은 기대하기 힘들다. 가린 이후의 젊은 영화세대에 희망을 기대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들의 도전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250여가지의 언어와 300여 종족, 그리고 유인도(有人島)만 6,000여개에 달하는 이 세계 최대의 군도국가(무인도를 합치면 14,000여개)가 지닌 문화적 다양성은 인도네시아영화의 풍부한 자양분이 될 것이며, 젊은 영화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발견하려는 시도가 이와 맞물려 창의적이고 의욕에 넘치는 작품들이 배출될 것이다. 80년대 이후 아시아에서 중국, 이란, 한국, 태국이 걸어왔던 ‘성장의 길’을 이제는 인도네시아가 이어받을 것이다(비록, 산업적으로는 미흡할지라도). 부산국제영화제가 지금 인도네시아영화를 주목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