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전부터 영화평론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던 <알포인트>가 관객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은 모양이다. 1975년 우리 현대사에서 삭제된 뒤 우여곡절을 겪었던 전쟁을 되새김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기쁜 일이다. 이미 3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른 지금 이 전쟁이 도착한 좌표는 어디일까? 유감스럽게도 <알포인트>의 좌표처럼, 우리는 아직도 이 전쟁의 언저리, 또는 과거, 또는 그 어디도 아닌 곳을 맴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알포인트의 좌표는 상징적이다. 63도32분, 53도27분에 위도와 경도를 대입하면 이 포인트는 남극이거나 북극에 근접한 지구상의 어느 위치를 가리킨다. 호치민의 서남부 150km 또한 유령의 지점이기는 마찬가지이다. 그곳에는 섬이 없다. 미루어 짐작건대 호치민에서 383km 떨어진 푸쿠옥(Phu Quoc)섬일지도 모른다. 이 섬은 호치민의 서남부이며 캄보디아 국경에 접해 있고 프랑스 식민지 시절 제국군과 휴양소가 마땅히 있었음직한 섬이다. 그런데 <알포인트> 홍보진들의 정보에 따르면 한때 중국군(인민해방군 또는 장가이섹군?)이 베트남 양민을 학살한 섬이어야 한다. 이런 일은 호치민의 서남부에서는 불가한 사건이다. 중국인들은 단지 북부만을 침략해왔다. 그러나 무슨 상관인가. 이것은 영화일 뿐 역사책이나 백과사전이 아니다.
진정으로 유의미한 것은 알포인트의 한국적 좌표이며, 오늘 우리에게 있어 베트남(전쟁)은 무엇인지에 대한 해답을 얻는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정성일이 간단하게 <암흑의 핵심>과 <지옥의 묵시록>을 언급(<한겨레> 8월23일치)하고, 변성찬이 <지옥의 묵시록>에서 출발해 ‘타자-되기’로 끝나는 더 길고 복잡한 버전의 글(<씨네21> 469호)을 남긴 것은 매우 의미심장했다. 아마도, 30여년의 기억상실증 끝에 우리가 도착한 좌표는 바로 이 지점일 것이지만, 여전히 문제적이다. <지옥의 묵시록>이 <플래툰>보다 탁월한 베트남 전쟁(2차 인도차이나전쟁)에 대한 영화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전쟁의 본질 중 하나가 공포이며, 베트남 전쟁이 피할 수 없는 가해자의 공포로 성장했을 때 비로소 심화되는 ‘제국주의적’ 자의식을 훌륭하게 묘사했기 때문이다(물론 그것은 코폴라의 능력이 아니라 조지프 콘래드의 성취이며 코폴라는 그것을 단지 베트남 전쟁에 차용했을 뿐이다). 그런데, 콘래드로부터 기원하고 코폴라를 통해 각색된 그 심오한 공포의 한국적 대입에는 또 다른 타자화의 함정이 입을 벌리고 있다.
말하자면, <알포인트>의 최태인 중위는 베트남으로부터 초대받은 것이 아니라 미국으로부터 초대받은 것이었다. 전쟁은 남한이 도발한 것이 아니라 미제국주의가 도발한 것이다. 남한은 단지 제국주의의 마름으로 그 전쟁에 목덜미를 잡혀 끌려갔을 뿐이다. 이것이 남한에게 있어서 이 전쟁의 본질이며, <알포인트>가 <지옥의 묵시록>과 무관한 이유이다. 중요한 사실은 이 전쟁에 코폴라적 자의식을 대입시키려는 순간 그의 의식은 또 다른 제국주의 즉, 하위제국주의의 포로가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끌려간 자로서의 식민지적 자의식이 실종되고 침략한 자의 제국주의적 의식에 대한 명백한 흉내내기가 횡행할 때,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타자화의 하위적 주체로의 허위적 격상일 뿐이다. 이것이 변성찬이 해설하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남한인의 ‘타자-되기’가 재빨리 도착하게 될 역행의 종착역이다. 이 종착역의 플랫폼에서는 남한이 (제국주의 전쟁의) 피해자가 아닌 순수한(!) 가해자로, 베트남 민중이 연대의 대상이 아닌 가련한 희생자로, 변질된 전쟁의 공포가 밑도 끝도 없는 시혜적 죄책감이 되어버린다. 그 결과, 우리는 ‘미안해요. 미안해요’라고 읊조림으로써 ‘무서워라. 무서워라’(Horror. Horror)라고 신음했던 커츠 대령의 발꿈치를 핥게 되는 것이다.
알포인트가 존재하지 않는 위치라는 점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공수창은 자신의 노트에서 <알포인트>의 시발이 자신의 군대 경험이었으며 알포인트가 (남한의) 서해안 어느 무인도였다(<씨네21> 467호)는 것을 밝힌 바 있다. 그는 시놉시스를 영화적으로 베트남 전쟁에 대입했을 뿐이다. 그로써 <알포인트>는 성공의 동력을 얻었지만, 그 동력이란 남한이 언제부터인가 빠져들어가기 시작하고 있던, 이 전쟁에 대한 자의식을 빙자한 하위제국주의적 환시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전쟁에 대한 텍스트의 실마리를 쥐고 있는 자는 누구인가? 콘래드인가 코폴라인가, 아니면 프란츠 파농인가.
유재현/ 소설가·<시하눅빌 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