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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지 깔고 앉아 위원장이랑 오뎅 먹던 재미
2004-10-07

부산영화제는 왜 매번 손홍주만 가냐고 사람들은 내게 자주 묻는다(원래 우리 사진팀은 영화제를 서로 돌아가며 가는편이다). 그때마다 해주는 대답이지만, 이 영화제만큼은 내가 지켜야 겠다는 책임감 비슷한 게 나한테는 있다. 씨네 21이 하는 행사도 아닌데 너무 오버하지 말라고? 그게 아니다. 내가 부산영화제를 기억하는 시간은 씨네 21을 돌아보는시간하고 같다.

그러니까.....우리가 부산영화제 데일리를 만들 게 된건 창간호부터다. 씨네 21과 같이 출발한 셈이다. 그때는 참 열악한 환경이었다. 처음에는 시행착오도 많고, 어려운 점도 많았다. 지금이야 모든 사진 기자들이 디지털로 찍기 때문에 그럴 문제가 없지만, 필름으로 작업하던 그때는 헤프닝도 많았다. 하루에 네가 필름 현상하고, 체크하고, 인화하고 다 해야한다. 그럴 때, 사고가 나면 발로 뛰는 수 밖에 없다. 표지사진으로 들어가야 할 사진이 작게 나오는 바람에 잠자고 있는 인쇄소 주인을 한밤중에 깨워 기계 몽땅 다시 켜고 재작업했던 적도 있을 정도니까.

하지만 역시 1회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이거다. 어느날이었더라, 김동호 집행위원장과 외국 게스트들이 길바닥에신문지 깔고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뭔가 작품이 될 것 같아서 급하게 뛰어나가 봤더니, 야 그 진풍경이란...남포동 뒷쪽 포장마차에서 몇몇이 시작한 모양이던데, 전화해서 호텔에 있는 사람 불러내고, 오고 가던 사람 붙잡고 해서 커진 모양이었다. 길거리 포장마차 좁으니까 나가 앉는 수밖에 더 있겠나? 별거 아닌 오뎅 안주 하나 놓고 소주를 먹고 있는데, 사람들 숫자가 이면도로 하나를 완전히 장악할정도였다. 생각해보시라. 국제 영화제 집행위원장과 외국 게스트들이 길바닥에 신문지 깔고 앉아서 소주 먹는 장면을! 하여튼 그 포장마차 그 날 오뎅 모자라서 온동네 오뎅집 돌아다니면서 공수 해올 정도였다. 그 모습이 굉장히 정겨워 보였다. 나도 같이 앉아서 소주 한 잔 걸칠 정도로. 아마 그런 친밀한 모습이 외국에 부산영화제를 알리는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지금도 베를린 영화제나 칸 영화제에 가면 부산영화제 데일리 만드는 씨네 21에서 일한다고 나를 소개한다. 그냥 바람이지만, 부산영화제도, 씨네 21도 10회가 될쯤에 그동안 사진들 모아서 전시회라도 한 번 하면 어떨까 싶다.

글=손홍주(씨네21 사진기자), 사진=장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