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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드의 제왕, 러스 메이어 사라지다
김도훈 2004-10-07

누드의 제왕 러스 메이어가 지난 9월18일, 할리우드에 있는 자신의 자택에서 82살의 나이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마감했다. 사인은 폐렴으로 인한 합병증. 12살 때부터 8mm 카메라로 영화를 찍었고, 2차대전 중에는 뉴스를 촬영했으며 <플레이보이>의 사진작가를 거쳐, 하드코어 포르노가 미국에 정착하기 전인 50년대 말부터 누드영화를 찍었던 섹스영화의 아이콘, 러스 메이어. 그는 1950년 <프렌치 핍 쇼>로 감독 데뷔를 치른 뒤 23편에 이르는 애간장 녹이는 ‘도색영화’들로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채웠다.

<더 빨리, 푸시캣! 죽여라! 죽여!>(Faster, Pussycat! Kill! Kill!) <암여우> <인형의 계곡> 등 그의 영화에는 커다란 가슴을 가진 여자들이 반나체로 등장해 유약한 남성을 조롱하는 일이 일상적으로 벌어졌고, 영화제작, 개봉 당시에는 온갖 논란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처음으로 걷는 이는 언젠가 재조명되게 마련. 영화기자 케빈 토머스가 “이성애자 남성의 섹스에 관한 판타지를 위대한 예술한 취향으로 승화시켜 조망했다”고 평했던 그는, 몇 십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는 전세계 각종 영화제에서 작품들이 특별상영되고, 예일이나 하버드, USC와 같은 점잖은 대학 강단에서 누구보다도 흥미로운 텍스트로 읽히는 것으로 자신의 업적을 인정받았다. 미국의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60년대 말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만큼이나 그의 영화 <인형의 계곡>을 지지했으며,이런 인연으로 에버트는 <인형의 계곡>의 속편 <인형의 계곡을 넘어>의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