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는 지금 알려진 바로는 사망자만 400명 정도고, 사상자는 1천명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베슬란 주민의 1% 이상이 죽었다고 한다. 그것도 단 1시간 만에. 누가 이들을 죽인 걸까? 30명 남짓의 인질범? 정말 그럴까? 그렇다면 그건 그들의 살상능력을 과대평가한 게 아닐까? 그들의 총이나 무기는 아마도 러시아 군인들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희생자들의 살에 가 박힌 총알이나 그들의 살을 태우는 화약은 아마도 대부분 러시아 군인들의 손에서 날아간 것일 게다. “인질들을 구출하기 위해서” 말이다!
진압작전의 시발이 된 폭발이 테러리스트의 폭탄 때문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것을 믿지 않는다. 인질범들은 인질들을 죽이기 위해 인질을 잡고 있는 게 아니다. 폭탄의 사용이 야기할 결과를 뻔히 알고 있을 그들이 왜 특별한 이유도 없이 폭탄을 터뜨리고 총질을 해댄단 말인가? 더구나 그들은 협상을 위해 30명가량의 인질을 풀어주지 않았던가? 폭발은 사망자들의 시신을 인도한 직후에 일어나지 않았던가? 폭발은 한편에선 협상을 진전시켜 안심하게 한 사이 인질범들을 습격하려는 아주 통속적인 진압작전의 시작종이었을 게다.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게 인질범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물론이다. 인질범이 없었다면 인질극도 없었을 것이고 인질들 또한 죽지 않았을 테니까. 그러나 그들은 왜 비난을 받으며 인질범이 되었고, 왜 목숨을 걸고 인질극을 벌였을까? 알다시피 러시아 군대가 멀쩡히 살던 곳에 탱크와 장갑차를 밀고 들어가 체첸인들을 정복하고 죽였기 때문이다. 누구는 죽은 가족의 복수를 위해, 누구는 자신의 “조국의 독립을 위해” 무기를 든 게 아닌가? 그렇다면 사태의 원인은 러시아의 국가적 폭력으로 거슬러올라가야 하지 않을까? 인질구출? 30명 인질범을 잡으려고 400명을 죽이고 600명을 사경에 몰아넣은 작전이 정말 인질구출작전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들의 관심사는 오직 인질범의 제거에 있었던 게 아닐까? 인질들이 얼마가 죽든 간에. 예전에 오페라 극장에 독가스를 쏟아넣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차라리 테러범들을 그냥 놔두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그게 그나마 희생을 줄이는 길 아니었을까?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죽이며 진압을 해야 했을까? 그건 분명 승패가 걸린 문제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저들에게 질 순 없다, 저런 놈들은 가차없이 진압한다는 걸 보여주어야 다신 이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 등등의 계산이 있었을 게다. 물론 이런 모습은 테러가 있을 때마다 보았던 거지만, 그렇다고 테러가 정말 줄었을까? 9·11과 미국의 대테러전쟁 선언 인후 전세계는 오히려 테러가 급증했고, 신문의 국제면은 테러 관련 기사로 가득 차게 되지 않았던가!
그런데 정말 황당한 것은 인질을 잡은 인질범들의 테러에 대해서는 극단의 비난을 가하면서도 1500명의 인질을 향해 총질을 하며 돌진한 무참한 폭력에 대해서는 ‘지나친 진압작전’이라는 식으로 일종의 비판적 지지를 보낸다는 사실이다. 아무 죄 없는 “불특정 다수의 인민”들에게 비행기와 탱크, 장갑차를 앞세워 막강한 포격과 폭격을 퍼붓는 끔찍한 폭력에 대한 우리의 너그러움은, 사실 이에 비하면 정말 ‘새발의 피’ 정도인 테러리스트의 폭력에 대한 극단적 적대감과 너무도 대조적이다. 이 거대한 불균형과 비대칭성! 그건 국가가 하는 일은 일단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보는, 심지어 국가가 사용하는 폭력조차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일 거라는 ‘거대한 환상’에 기인한다. 이는 국가에 맞선 모든 종류의 폭력을 절대적 죄악으로 비난하는, 따라서 그에 대한 어떤 국가적 폭력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또 하나의 환상을 동반한다. 이는 그 국가적 폭력에 의해 매장된 분노의 목소리들이 소리나게 하려는 또 다른 테러들을 야기한다.
물론 나는 모든 종류의 테러에 대해 반대하며, 그래서 한 아랍어 방송사 사장이 썼다는 ‘고통스러운 진실, 세계의 모든 테러리스트는 이슬람교도다’라는 칼럼이 테러로 복수를 꿈꾸는 ‘용기있는’ 젊은이들에게 진지하게 읽히길 바란다. 그렇지만 그런 만큼이나 테러를 빌미로 행해지는 국가들의 거대한 폭력에 대해, 혹은 미친 듯한 테러의 증식을 야기하는 거대한 국가적 폭력에 대해 ‘양식있는’ 모든 국민들이 테러 이상으로 경악하고 경계하게 되길 바란다.
이진경/ 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원·서울산업대 교양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