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에 결핵으로 죽은 에밀리 브론테가 남긴 단 한편의 소설인 <폭풍의 언덕>에 빠진 건 비단 독자만이 아니다. 이 열정과 복수의 드라마는 이미 수많은 감독을 끌어들인 바 있는데, 여기에 MTV가 동참했다. <폭풍의 언덕>은 MTV가 TV용 오리지널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설립한 ‘MTV필름’이 진행했던 작품 중 하나다. MTV의 뮤직비디오 같은 영화가 널린 게 요즘이지만 정작 MTV에서 만든 것은 어떤 모습일까? 짐작과 별로 다르지 않다. 기타와 첼로를 연주하고 오토바이를 모는 금발의 예쁜 아이들이 쉬지 않고 흘러나오는 매력적인 록과 발라드에 둘린 모습은 영락없는 소프트 록 뮤지컬 혹은 섹시한 동화다. 21세기의 아이들에게 웬 빅토리아 시대 소설의 도그마냐고 반문했을 MTV의 의욕과는 달리 그들은 <폭풍의 언덕>이 어떻게 클래식으로 남았는지 모르고 있다. <폭풍의 언덕>의 정수는 강렬한 감정과 자연의 의미에 있다. 차라리 고전적인 윌리엄 와일러판은 논외로 하더라도, MTV판은 자크 리베트판의 엄격한 자연의 이미지나 루이스 브뉘엘판의 격렬함엔 미치지 못한다. 어쩌면 이 모든 게 캘리포니아(실제 로케이션은 푸에르토리코였다)의 밝은 햇살 탓인지 모른다. 요크셔지방 워더링 하이츠의 음산함은 멀리 걷히고, 인형 같은 아이들의 반짝임만 남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원작과의 비교를 허하지 않는 사람들과 상관없이, 미국의 적잖은 십대들은 이 작품에 열광했던 모양이다. 그 속은 몰라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DVD 영상은 깨끗하고 사운드의 울림도 좋지만 부록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