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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라면 출연거부라도 할텐데…, <에이리언 vs 프레데터>

투덜군, <에이리언 vs 프레데터>의 괴물들을 동정하다

뱀 몇 마리를 사고 싶었다. 그것은 물론 <에이리언 vs 프레데터>(이하 AVP)를 상영하는 극장에 풀어놓기 위함인데, 개인적으로 <에이리언> 3부작을 대단히 애호해 마지않는 필자로선, 과거 <에일리언4>(Alien: Resurrection)가 선보였던 ‘삼계탕형 합성 에일리언’과 동일 규모의 재앙이 또다시 재현되는 것을 마냥 좌시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던 게다.

하지만 이런 의문이 들었다. 뱀, 그리고 뱀 넣을 까만 비닐 봉투 등 기초 재료비는 물론이요, 교통비며 인건비나 제대로 나올 것인가 하는 의문 말이다.

코딱지만큼의 해석의 여지조차 남기지 않는 투명영롱한 제목에다가 ‘몇 천년 묵은 피라미드’라는 진부찬연한 컨셉을 결합하면 0.1초 내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1차원적 설정들을 집대성해놓은 듯한 당 영화 속에서 그저 하염없이 망가져만가는 양대 괴물들의 참상을 낱낱이 목도하던 그 혼돈의 와중에서도 필자는 이에 대한 답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그 답은 몇 천년도, 몇 백년도 아닌, 바로 5년 전의 과거에서 발견된다.

일찍이 노스트라다무스가 지구종말의 시기로 예언했던 바 있던 지난 99년 8월. 바로 그 타이밍에 맞춰 전격 개봉함으로써 세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던 영화 <용가리>를 기억하시는가. 감히 끝까지 관람해내는 사람이 거의 없어, 항시 본의 아닌 베일에 가려져 있는 전설과 신비의 영화 <용가리>…. 놀랍게도 〈AVP〉는, 바로 그 <용가리>와 놀라우리만큼 닮아 있다.

놀이동산적 고대 문자와 그 해독, 지구상공에 떠 있는 외계인 모선, 거기서 발사된 대왕급 광선으로 시작되는 재앙, 그리고 인간과 괴물 사이의 풋풋하고도 민망스런 우정으로 장식되는 대미 등등등…. 〈AVP〉는 거의 <용가리>에 대한 오마주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유사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는, 〈AVP〉가 걸어갈 길이 결국 <용가리>의 그것과 그닥 다르지 않을 것임을 말없이 웅변해준 결정적인 대목이었던 바, 필자의 분노는 어느덧 동정과 연민으로 변하고 있었다.

자, 괴물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보자. 만일 당신이 에일리언이나 프레데터 같은 거물급 괴물이었다면 이런 영화에 출연하고 싶었겠는가. 인간 배우라면 출연 거부라도 하지, 마지막 한 방울까지 자신의 단물을 뽑아내려는 영화자본의 압력 앞에서 힘없는 괴물들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말이다.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은 오로지 단말마의 “꿰엑”만을 남긴 채 하염없이 망가져가는 것뿐….

아아… 정녕 그랬다.

이 영화에서 가장 강력했던 괴물은, 언제나처럼, 초야에 묻혀 조용히 살고 싶었던 얘들을 끌어내, 결국 한판 붙게 만들고야 만 인간들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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