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중공(中共: 중국공산당)으로 불리던 때가 있었다. 까마득히 오래전도 아니다. 1992년 한-중수교 이전까지 지금의 중국은 다만 중공이었다. 바로 그 중공 때문에 나라가 시끄럽다.
고구려사 왜곡으로 촉발된 논란은 동북공정을 거쳐 급기야 중국의 패권주의에까지 이르고 있으며 온 국민이 한목소리로 중국을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상대는 중국이 아니라 중공이다. 왜냐하면 1949년 이래 중국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중국공산당으로 동북공정뿐 아니라 중국의 만사가 당연히 중국공산당의 책임이다. 말하자면 ‘중국의 패권주의’가 아니라 ‘중국공산당의 패권주의’를 운운하는 것이 모쪼록 이치에 맞다.
중국공산당의 패권주의는 어디에 숨어 있다가 돌연 나타난 것일까. 원래 있었다거나, 한반도의 정세 변화 때문이라거나, 동북3성의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이라거나 등으로 설명하지만 글쎄? 내가 보기에는 ‘중국공산당의 자본주의’라는 전후 불일치의 웃기는 조합이 그 원천이다. 중국공산당은 1978년 이른바 개방, 개혁 이후 엉뚱하게 공산당도 자본주의를 할라치면 그처럼 본때있게 할 수 있다는 역사상 초유의 시범을 가뿐하게 보여주었다. 비감한 것은 그 과정에서 자국 인민을 그토록 무자비하게 박살내기를 마다지 않을 줄은 미처 몰랐다는 것이다(물론 예상했던 사람도 있겠지만).
1949년 혁명 이래 중국의 인민 즉, 노동자와 농민은 중국공산당의 근본이었다. 또한 마오쩌둥이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으로 수천만 중국 인민의 목숨을 제물로 하고도 온전할 수 있었던 것은 ‘사회주의의 대의’ 때문이었다. 중국의 사회주의는 중국 인민이 감내했던 그런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 이념을 쓰레기통으로 내던진 중국공산당은 바로 그 중국 인민을 자본주의의 제물이자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 저임금을 기반으로 한 무한정의 외국자본 끌어들이기와 극단적인 수출주도형 드라이브 경제는 공공기업의 몰락은 물론 노동조건의 심각한 악화로 귀결되었으며 이촌향도(移村向都) 정책으로 이농현상이 가속화하면서 앞으로의 사정도 불을 보듯 뻔해 노동자, 농민의 처지는 파탄의 지경이다. 2003년 GDP 1조4천억달러, 수출 4385억달러와 함께 9.1%의 경제성장률을 보여 수출로는 한국의 2.5배, 경제성장률로는 한국의 3배 이상을 기록할 수 있었던 중공산 엔진의 성능은 이처럼 중국인민이 흘린 피와 땀의 급유로 이루어진 것인데 이 엔진이 우리 눈에 그리 낯설지 않다는 점에 주목하기 바란다.
수출주도형 개발지상주의의 그늘 아래 억압당하고 고통받는 인민,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가고 있는 외자(外資)와 송두리째 떡을 차지하고 있는 한줌의 자본들, 떡고물에 눈이 먼 권력의 구역질나는 부정과 부패. 이 풍경은 1970년대의 남한이 아니라 21세기 현재의 중국이지만 그 엔진은 박정희표 엔진이다(1990년대 중국공산당이 박정희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던 것을 상기하기 바란다). 이러니 중국의 눈치를 보는 아랫녘 남한에서 다시 박정희의 망령이 무덤에서 기어나와 딸의 몸을 빌려 목소리를 드높인다고 해서 딱히 놀랄 일도 아니며 내부 통제의 수단 중 하나로 중국식 패권주의의 기치를 높인다고 해서 괴이할 것도 없다. 한편 중국공산당의 피도 눈물도 없는 자본주의는 중국 인민만의 문제가 아니다. 2003년 한국의 대중(對中)수출은 전년대비 50.3%가 증가하는 가공할 기록을 보였고 이것에 힘입어 같은 해 한국의 총수출은 1938억달러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당연히 그런 일은 없다. 수출과 투자에서 대중 의존도가 드라마틱하게 심화되는 가운데 한국의 산업은 바야흐로 사상 유례가 없는 공동화의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그 결과 수출은 호황이지만 경기는 불황이고 실업률은 고공행진을 멈추지 않고 있으며 한국 노동자, 농민의 처지는 더욱 악화되고 있다. 한국뿐일까? 가깝게는 대만과 싱가포르 같은 아시아의 작은 용들은 물론 말레이시아, 타이, 인도네시아 등의 동아시아 인접국들에서는 예외없이 노동자와 농민이 중국공산당이 펼치는 자본주의의 일차적 희생양이 되고 있다.
이래서 길은 하나, 동아시아의 민중적 연대뿐이다. 특히 중공의 자본주의에 가장 큰 희생자인 중국 인민을 앞세우는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 아니 동아시아의 인민이여 중공에 대항해 단결하라. 그리고 중공에 부탁한다. 어지간하면 당의 이름 좀 바꾸어주면 좋겠다. 예를 들면 ‘중화민주공화당’이나 ‘중화자본당’ 정도로.
유재현/ 소설가·<시히눅빌 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