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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술 먹는 방법
장진(영화감독) 2004-09-10

공짜로 술을 얻어먹는 방법에 대해 얘길 해보자.

먼저 예쁜 여자친구를 만든다. 눈이 맑고 보석 같아 그 눈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의 모든 시름이 녹아내리기도 하겠지…. 그 여자친구와 진한 사랑의 깊이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의 구렁 속에서 기다린다. 물론 결혼 같은 건 꿈도 꿔선 안 된다. 그렇게 그냥 사랑인 듯 애인인 듯 지내는 것이지. 그러다보면 십중팔구 그녀에게 새로운 남자친구가 생길 것이다. 그리고 그녀와 그녀의 새로운 남자가 내게 와선 ‘우리 서로 사랑해요’라고 고백을 할 것이다. 그때, 씁쓸하고 울음이 터질 듯한 슬픈 얼굴로 “술이나 한잔 사라”고 얘기한다. 얼마만큼 슬픈 얼굴을 짓느냐에 따라 술의 종류와 술의 양이 달라질 수 있다. 행여 술 대신 밥이 좋으신 분들은 “밥이나 한끼 사라…. 고기로 사라, 꽃등심” 뭐 이렇게 말해도 크게 달라짐 없이 목적을 이룰 수 있다.

이쯤에서 물어볼 질문….

-꼭 예쁜 여자친구여야 하나요?

물론 아니다. 그리 예쁘거나 보잘것없는 여자친구도 나와 장래의 희망없이 조금만 있다보면 새로운 남자친구가 나타나게 된다. 걱정마라. 하긴 내가 예쁜 여자친구를 만난다는 것이 설득력 없는 얘기였을지도 모른다. 근데 괜찮다. 그냥 어떤 여자라도 무관하다.

-그렇게 기다려도 그녀에게 새로운 남자친구가 안 생기면 어떻게 하죠?

어떤 여자이기에 그러냐? 웬만하면 다 생기는데…. 그리고 나랑 조금만 있다보면 다 새로운 남자를 꿈꾸게 된다. 나의 매력이란 게 그런 것이지. 중국집 자장면 같은 거…. 시키는 순간부터 짬뽕과 군만두, 볶음밥도 같이 생각나게 하는, 그래서 음식이 나오기 직전까지 내내 바꿀까 말까 고민하다가 행여 주문 잘못 들어가서 “죄송합니다. 짬뽕인 줄 알고… 금방 다시 만들겠습니다”라고 하면 얼른 “아니요, 그냥 뭐 그걸로 먹을게요”라고 하는… 내가 바로 그런 종류지. 헤헤….

-자주 얻어먹을 수는 없을 거 같은데요.

맘먹기에 따라 다르다. 여자친구 만들어 딴 놈한테 뺏기기! 이게 자랑인 사람도 없을 거고 이런 것을 취미로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럴 때마다 공짜술을 얻어먹어보면 뭐 그다지 큰 어려움 없이 만들어 뺏기고 얻어먹고 또 만들면 뺏기고 얻어먹고…. 자연스러운 삶의 습관이 될 수도 있지.

-혹시 술을 사달라고 했는데 안 사주고 그냥 가버리면 어쩌죠?

그러니까 표정이 중요하다. 왠지 그 술 한잔이면 지금까지의 모든 걸 잊고 둘의 사랑을 빌어줄 듯한 그런 표정으로 얘길 해야 한다. 보아라, “술이나 한잔 사라” 얼마나 배포있고 시원한 말이냐?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술 한잔이 진짜 별것도 아니듯이 얘길 해야 한다. 그래서 굳이 술이나 한잔이라고 얘길 하는 것이다. 행여 술 한잔 사주실 수 있나요? 아니면 술 한잔 사주시면서 다시 얘기해볼까요? 뭐 이런식이라면 실패할 확률도 있겠지.

-만약에 여자친구를 너무 사랑해서 술이 아니라 그보다도 더 큰 뭔가를 준다 해도 그녀가 다른 남자에게 가는 것이 견딜 수 없어지면 어쩌나요?

이건 또 무슨 소리냐? 공짜술을 얻어먹을 수 있는데?

-정말로 사랑한다면 공짜술을 떠나서 가슴이 아플 거 같은데요….

그러니까 술을 먹는 거 아니냐? 가슴이 아프니까 술을 먹고 아픈 사람이 먹는 거니 사줘야 되는 것이지….

-너무 사랑해서 다신 그런 사랑을 못 만날 거 같아 그녀를 보낼 수 없게 되어버리면 어쩌지요?

내가 그런 사랑을 할 수 있단 말이냐?

-네….

내가 그런 사랑을 하게 된다 이 말이지?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거죠….

내가 그런 독한 사랑을…. 그러니까 공짜술을 사준대도 바꿀 수 없는 그런 사랑을 할 수도 있다, 이 말이지?

- …

어이, 술 한잔 사줄 테니… 이 문제에 대해서 좀더 진지하게 말해볼까?

장진/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