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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취미는 금연이다
장진(영화감독) 2004-08-20

내 취미는 담배를 끊는 것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취미는 금연, 그것이다.

그렇지, 담배를 끊기…. 많은 사람들이 연초에 행하는 다짐이다.

“담배를 끊겠어 끊고 말겠어…!!”

물론 술을 끊겠어, 도박을 끊겠어, 회사를 끊겠어, 마누라를 끊겠어 등을 다짐하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그중 가장 많은 다짐은 담배를 끊는 것일 테지.

연초가 아니라도 알 만한 공인이 폐암으로 죽거나 투병 중이란 말을 들으면 불안한 심리에 ‘그런 유명한 사람도 담배 때문에 그런 몹쓸일이 생기는데 나도 얼른 끊어야지 큰일나겠어’ 하며 또 많은 사람들이 담배를 끊는다.

그렇지… 담배 때문에 몹쓸일이 많이 나니까….

행여 수능 만점을 받은 어떤 사람이 중학생 때부터 담배를 적당량 피운 것이 암기와 논리에 영향을 주어 이런 영광을 안았습니다, 혹은 올림픽 금메달을 딴 누군가가 선수촌 담벼락 밑에서 몰래 피운 담배 덕분에 체력이 좋아지고 민첩해지고 순발력과 집중력이 생겨서 금메달을 땄습니다라고 얘기해주지 않는 이상 담배로 인해 생긴 몹쓸 사정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담배를 끊게 만든다.

그런데도 참 이상하다. 버린 담뱃불 때문에 집이 불타고 산이 불타고 공장이 불탄다라는 소식을 들을 땐 금연을 생각하지 않으니…. 담배란 정말로 지극히 개인 신변과 장수의 의지에 비례하여 생각이 되나 보다.

난 담배를 끊는 것을 좋아한다.

누군가가 “담배 하시겠어요?”라고 물어볼 때 연한 미소로 “괜찮습니다… 끊었는걸요”라고 말할 때 그가 날 바라보는 존경스러운 표정을 좋아한다.“그 힘든 걸 어떻게 끊으셨나요?”라고 질기게 물어오는 누군가가 있다면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취미인걸요.”아, 그 말을 들은 이가 ‘이건 또 무슨 조크란 말인가? 장진식 유머인가? 날 놀리는 말인가?’ 의아해하는 얼굴을 짓는다면 그 얼굴을 바라보는 것 또한 좋아한다. 난 담배 끊는 것이 취미인 사람이니까….그런데도 참 이상한 건 담배를 안 피우는 사람과 담배를 끊은 사람은 다르다는 것이다. 내가 이상한가? 그럼 이상하다치고…. 담배를 안 피우는 사람은 담배를 모른다. 그 연기가 내 몸속에서 어떤 작용을 일으키는지 그것이 내 정신을 얼마나 혼탁하게 하는지 그 혼탁함이 때로는 내 고민의 밝은 빛이 되었던 성공 사례에 대해 얘기할 수 없다. 하나, 담배를 끊은 사람은 다르다. 담배를 끊은 사람은 알고 있다. 담배가 타들어가는 시간 동안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수많은 깨우침과 철학이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음을…. 삶의 희로애락 그 어느 부분이 그 담배의 재와 함께 커졌다간 사라지고 다시 불타오르고 있었음을… 그리고 그 유혹의 점화를 그들은 이겨내고… 담배를 끊은 것이다. 하나 문제는 담배를 끊는 그 거룩하고도 극기의 일을 왜 한번 하고 말려 하는 것이냐다.

이건 또 무슨 미친 소리냐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럼 미쳤다 치고….난 금연을 밥먹듯이 한다. 일년에 몇번을 담배를 끊고… 한달에 몇번을 ‘끊었습니다 담배…’를 남발하고… 많을 땐 하루에도 몇번씩 피우던 담배를 끊고 있다.담배를 끊고 삶의 유혹과 그 수많은 고민을 나 스스로 풀어나가고 있음을… 난 그 반복의 수만큼 느낀다. 금연은 좋은 취미다. 좋은 취미라 너무 자주 하는 경향이 물론 있지만, 난 피우던 담배를 끊을 때 마다 난 좀더 새로워질 수 있고 난 내 관습과 오래된 의지에서 벗어남을 느낀다.

생은 그런 것이지…. 익숙한 것에서 늘 벗어나는 일…. 피우던 담배를 늘 끊고… 금연하는 일….삶은 그런 것이지…. 손에 배어나오는 담배 눌린 냄새를 비누로 씻고 오늘만은 잠시라도 좋은 향이 풍기는 손으로 하루를 보내는 거…. 내 취미는 여전히 담배를 끊는 것이다.

혹 누군가는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다.

“그건 담배를 끊는 게 아니고 그냥 피우던 담배를 끄는 거 아니오? 담배 끄고 잠깐 동안, 다시 담배를 피울 동안 비누로 손 씻는 거 아니오?” 내 말을 이렇게 생각한다면… 뭐 그런 거라 치고….장진/ 영화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