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배우 김부선이 대마초를 피웠다는 혐의로 구속되었다. 1983년 향정신성 의약품관리법 위반으로 구속된 이후 5번째의 감방행이었다. 으레 그렇듯이 처음 두번은 벌금형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8년 동일한 혐의로 다시 구속된 이 불굴의 대마적 여배우는 실형을 선고받고 8개월을 살아야 했다. 그리고 원모어 타임. 1998년 다시 구속. 어쩐 일인지 이번에는 400만원의 벌금형으로 감방살이를 모면했다. 그렇다면 2004년 김부선의 운명은? 수사관의 난입에 5층에서 몸을 날려 도주한 그녀는 다음날 자수했고 다행스럽게도 며칠 전 보석으로 석방되었다. 일단 검찰의 후의에 감사한다. 이제 남은 것은 재판이다.
김부선의 혐의는 지난 2002년부터 최근까지(아마도 2004년 6월 정도까지) 7회에 걸쳐 대마초를 흡연한 것이다. 2년 동안 7번. 후하게 쳐도 석달에 한번 꼴이다. 개그맨 신동엽 역시 1년 남짓 동안 7번에 걸쳐 대마초를 피웠다고 해서 구속된 바 있다. 1년 동안 7번? 영화배우 박중훈은 한달에 4번으로 1994년에, 가수 강산에는 ‘상습’적으로 피웠다고 해서 2000년 구속되었다(음, 이 정도는 돼야).
1975년 대마초 파동 이래 대한민국 국민들은 잊을 만하면 한번씩 대마초 파동을 타고 있다. 놀이동산의 롤러코스터도 이만큼 타면 싫증을 내게 마련이어서 사람들은 이제 면역이 되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말하자면 식상했다. 대검찰청 마약수사부 감독들에게 충심으로 말해야 한다. 백날 배우를 바꾸어보라. 도통 시나리오를 바꾸지 않으니 무슨 재간으로 손님을 끌겠는가. 당신들만의 독점적인 스크린쿼터로?
솔직히 말한다면 나는 대마초가 합법화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별일이 없었다면 이번에도 이렇게 투덜거리거나 비아냥거리며 지나가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그럴 수가 없다. 김부선 때문이다. 지금도 눈에 선하다. 동일 전과4범의 이 여배우가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구속된 것을 두고 언제나처럼 호들갑을 떨어대는 텔레비전 뉴스가 여배우의 지난 과거를 비추고 있었다. 1983년의 자료필름이 흘러가는 동안 나는 부끄러웠다. 김부선은 수사관들의 우악스러운 손길에 끌려가면서 개떼처럼 몰려온 텔레비전 방송사의 카메라 앞에서 의연하고 당당했다.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카메라를 피하지 않던 그녀의 눈길. 아, 그 빛바랜 자료필름에서 김부선은 양심범이었다. 그녀는 불알달린 누구처럼 찔찔 눈물을 짜지도 않았고 운동모를 눌러쓰거나 오리털 파커의 깃을 올리지도 않았다. 당당하게 고개를 치켜들고 조금은 상기된 표정이었지만 입가에 약간의 어색한 미소를 띠며 그녀는 그렇게 대마초를 ‘악의 풀’로 매도하는 세상의 횡포 앞에 의연한 자세로 맞서고 있었다.
용기를 내어 말해보자. 대마초를 피우는 것이 무슨 얼어죽을 죄인가? 대한민국은 1948년 이래 지금까지 6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독점적으로, 근자에는 공사(公社)적으로 담배를 팔아왔다. 담배는 술과 더불어 세계보건기구가 공인한 마약 중의 마약이다. 지난 30년 동안 수많은 연구결과들이 대마초가 담배보다 매우(!) 덜 해롭고 중독성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왔다. 5천년 동안 대마초 때문에 죽은 인간이 고작 1명에 그칠 때 담배는 2000년 한해에만 3만5천명의 대한민국 국민을 사망에 이르도록 했다.
더 큰 죄악은 국가가 배우와 가수들을 칠성판에 올려놓고 그들의 양심과 인간성을 난자했다는 것이다. 도대체 강산에와 같은 가수가 “죄를 지으면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는 진리를 알게 됐다”고 매스컴 앞에서 중얼거릴 때 그의 양심이, 그의 예술적 자존심이 온전할 수 있었다고 우리는 믿을 수 있을 것인가. 박중훈이 기자회견석상에서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떨구는 치욕을 감수하고도 얼마든지 훌륭한 배우가 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을 것인가. 천만에. 그들은 고춧가루 물수건과 목욕탕, 군용발전기가 동원되지 않았을 뿐 분명히 반인간적이고 반문화적인 법과 매스컴의 더러운 고문에 굴복해 아무런 대가없이 영혼을 팔아버린 파우스트가 되어버렸다.
보석으로 풀려난 김부선이 스크린으로 무사귀환하기 위해서는 역시 마찬가지의 통과의례를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나는 그녀가 굴복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기를 바라지만 그러기에 그녀는 너무도 오랫동안 고통받아야 했고 또 너무 빈곤하게 살아야 했다. 때문에 나는 영화계와 음악계가 한마음으로 김부선의 문제에 대해 공공연하게 조직적으로 대응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는다. 왜? 지난 30년 동안 당신들이 가장 큰 피해자들 아니었던가. 쥐구멍에 고개를 처박고 전전긍긍 찔찔 짜온 세월이 30년이라면 이제는 쥐라도 못할 일이다.
유재현/ 소설가·<시하눅빌 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