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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고참 인디밴드의 7년, 허클베리 핀 <올랭피오의 별>
권은주 2004-08-06

19세기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 <톰 소여의 모험>의 속편이란 것은 상식이다. 그렇지만 ‘속편이 전편을 뛰어넘기 어렵다’는 20세기 영화계의 속설을 19세기 소설에 그대로 적용해서는 곤란하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미국 문학사상 손꼽히는 걸작이기 때문. 비록 이런 평가가 강단을 넘어 상식 수준으로 알려진 것 같진 않지만. 같은 세기에 살았던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도 그가 <노틀담의 꼽추>와 <레 미제라블>의 소설가라는 건 <도전! 골든 벨>의 10번대 이하의 문제에나 나올 법한 상식이다. 하지만 <올랭피오의 슬픔>의 한 구절을 읽어주며 ‘이 낭만적 장편시를 지은 시인이자 극작가이기도 한 19세기 프랑스의 문호는?’으로 질문을 바꾼다면 ‘친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단계의 문제에나 적합할 것이다.

대체 이런 얘기가 ‘이주의 책’도 아니고 ‘이주의 음반’ 꼭지와 무슨 상관이냐고 묻는다면, 허클베리 핀이란 록밴드의 신보 <올랭피오의 별>에 대해 얘기하기 위해 에둘러 운을 뗀 셈이라고 대답하겠다(예상하듯 타이틀은 시 <올랭피오의 슬픔>에서 따온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음반은 밴드 스스로 말했듯 ‘허클베리 핀 음악의 총정리’ 성격의 음반이다. 수록곡들이 7년여의 시간 동안 틈틈이 작곡된 곡들일 뿐 아니라 스타일에서도 이들의 음악여정을 두루 포괄하기 때문이다.

〈I Know> 〈K> <자폐> 등은 허클베리 핀이 활동 첫인상으로 남긴 그런지(grunge)와 펑크록 스타일의 곡들이다. 일면 직진하며 귀청을 때리고 일면 노이즈로 경계를 흐릿하게 하는 폭발적인 사운드는 팽팽한 긴장감을 전염시킨다. 반면 〈Time> <연> 〈Hey Come> 등은 2집 <나를 닮은 사내>(2001) 이후 다소 차분하고 유연해진 사운드와 맥을 같이하는 트랙들이다. 어쿠스틱 기타, 현악기, 키보드가 적잖게 구사되어 섬세하고 서정적인 질감을 짙게 풍긴다. 두 스타일을 저울에 단다면 무게중심은 후자가 될 테지만. 명쾌하고 거침없이 로킹한 〈I Know>나 현악 세션이 먹먹한 울림을 촉진하는 <연>은 계기만 마련된다면 대중적 히트를 기대할 만한 곡들이다. 서정적 분위기와 헤비한 사운드를 극적으로 대비시키는 <불안한 영혼>은 양대 스타일의 변증법적 결합이자 이 음반의 백미라고 평가할 만하다.

사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나 <올랭피오의 슬픔>을 몰라도 책읽기에 지장없듯, 허클베리 핀의 음악을 몰라도 음악 듣는 데(나아가 사는 데) 지장없다. 하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개인의 고립감, 소통 장애, 좌절감, 갑갑함 등을 음악으로나마 풀고 싶은 이들에게 이 음반은 ‘올해의 옵션’ 중 하나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좀더 ‘쎈’ 게 필요하다면 마침 재발매된 허클베리 핀의 데뷔작 은 ‘기본 사양’일 테고.

이용우/ 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