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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에 대한 예리한 심리 스케치, <울프>

<울프> Wolf

1994년 감독 마이크 니콜스 출연 잭 니콜슨

EBS 8월7일(토) 밤 11시10분

멀쩡했던 인간이 보름달이 뜨면 늑대로 변한다. ‘늑대인간’에 얽힌 전설은 흥미롭다. 어느새 늑대로 변한 그는 인육을 먹고, 은으로 만든 총알에 맞기 전까지는 여간해서는 숨이 끊기지 않는다. 늑대인간을 스크린으로 불러들인 것은 1930년대 호러영화에서도 발견되며 이후 <런던의 늑대인간>이나 <파리의 늑대인간> 등에서도 이 캐릭터는 곧잘 등장했다. 어쩌면 늑대인간이라는 소재는 드라큘라 등의 캐릭터에 비해 좀더 자주 영화에서 만날 가능성이 높을지 모른다. CG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이 캐릭터에 관한 상상력은 과거보다 구체적인 육체를 획득하게 됐다. <울프>는 마이크 니콜스 감독이 연출한 1994년작이다. 맨해튼 출판사 편집장인 윌 랜탈은 눈오는 날 밤 외딴 시골길을 달린다. 질주하는 그의 차 앞에 갑작스레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달려든다. 늑대는 도망가려 발버둥치며 윌의 팔을 물어뜯은 뒤 사라진다. 그 날 이후 윌의 생활은 변하기 시작한다. 그의 몸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성격은 점점 날카로워지고 이성마저 마비되어간다. 윌은 시간이 지날수록 어디에선가 솟아오르는 거친 본성에 잠식되어가고, 동료로부터 따돌림을 당한다. 사장은 그를 해고시키려 하는데, 사장과 사이가 좋지 않은 딸 로라는 윌을 알게 되어 친해지게 된다. 로라는 윌에게 비밀이 있음을 알게 된다.

혹시나 거친 액션, 깜짝 놀랄 만한 무시무시한 장면을 연상한다면 <울프>는 조금 싱거운 영화가 될지도 모른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자 잭 니콜슨이 연기하는 윌 랜탈은 중년의 남자다. 그의 생활은 다소 무기력해 보인다. 그런데 늑대로부터 물린 이후 생활이 변한다. 몸에서 털이 자라나고 감추어져 있던 그의 동물적 본능이 눈을 뜨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영화 <울프>는 가벼운 놀람이나 충격적 효과에 의존하는 것보다는 심리적 요소를 더 중시한다. 도회적 일상에 찌든 한 남성이 본능에 눈을 뜨고 억압했던 자아가 되살아나면서 겪는 일들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는 분열하는 자아에 관한 관찰이자 개인 심리에 관한 예리한 스케치에 다름 아니다. 즉, 인간의 야수성이 해방되고 사회규범과 충돌할 때 어떤 사건들이 벌어지는가, 라는 것이 영화 <울프>가 풀어놓는 이야기이다. 영화는 한 과학자가 파리로 변해가는 끔찍한 과정을 담았던 SF영화이자 크로넨버그 감독작인 <플라이>(1986)와 닮은 구석이 있다.

마이크 니콜스 감독은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와 <졸업>으로 1960년대 도덕적으로 무기력해진 미국사회를 들여다봤다. 이 영화들은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이름과 늘 나란히 거론되는 영화들이다. 이후 그는 <워킹 걸>과 <헨리 이야기> <울프> 등을 꾸준히 만들어 할리우드 중심부에 안착한 연출자가 되었다. 니콜스 감독은 <울프>에서 볼 수 있듯 심각한 주제의식을 대중적인 영화화법으로 풀어낼 줄 안다. 영화 <울프>에선 미셸 파이어, 잭 니콜슨의 연기호흡도 좋은 편이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