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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영화의 기이한 ‘일탈’, <매혹당한 사람들>

The Beguiled 1971년

감독 돈 시겔 출연 클린트 이스트우드

EBS 7월31일(토) 밤 11시10분

장르영화는 때로 기이한 재미를 주기도 한다. 관습적인 것에서 벗어날 때, 흔히 보던 장르영화에서 일탈할 때 남다른 순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매혹당한 사람들>이 그렇다. 남북전쟁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는 인터넷 사이트인 IMDb 기준으로 볼 때 전쟁영화, 그리고 드라마 장르로 볼 수 있다. 시간적 배경으로 볼 때, 그리고 중심적인 캐릭터로 볼 때 이 영화는 전쟁영화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영화의 핵심으로 접근할수록 <매혹당한 사람들>은 전혀 다른 곳으로 방향을 돌린다. <더티 하리>(1971)의 돈 시겔 감독작이다.

미국 남북전쟁 시기, 부상을 입은 북군인 존은 위기의 순간에 남부의 한 소녀에게 구출당한다. 소녀는 존을 자신이 있는 여학교로 데려가고, 모든 여직원들과 여학생들은 깜짝 놀라 기겁을 한다. 그렇지만 존을 간호하고 보살피는 것에는 동의한다. 시간이 흘러 학교생활에 적응하고 존이 회복되기 시작할 무렵, 많은 사람들이 존에게 매력을 느끼기 시작한다. 조금씩 학교 분위기는 질투와 기만으로 가득 차게 되고, 여학생들은 그가 계속 성적 노리개가 되어 학교에 남아주길 바란다. 학생들 사이의 긴장상태가 팽팽해지자 교장은 급기야 존을 주저앉힐 방법을 고심하기 시작한다.

<매혹당한 사람들>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작. <더티 하리> 시리즈와 다른 서부극을 통해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전형적인 마초 캐릭터들을 연기한 적 있다. 그런데 <매혹당한 사람들>에선 다르다. 영화에서 존이라는 북군을 연기하는 그는, 부상당해서 아예 침대에 누워 있다. 거동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태다. 영웅이라 보기엔 다소 딱할 정도다. 이 상황에 놓인 남성을 남부의 억척스런 여성들이 보살핀다. 교대로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주고 손수 식사를 먹여주기도 한다. 정겨운 장면이라 보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영화는 에로틱한 것에 방점을 찍는다. 전쟁 때문에 남성과의 접촉이 제한된 여성들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매력을 느끼고 클린트 이스트우드 또한 몇명의 여성들과 불장난을 하게 된다. 여기서 성적 판타지가 무럭무럭 피어오르고, 근친상간의 모티브가 가세하기도 하면서 영화는 이리저리 방향을 튼다. 제한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여성들의 심리극은 세밀하고 때로는 집요하게 느껴진다. 한 어린 여성과 침대에서 뒹굴던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단죄하면서 다른 여성들이 그의 다리를 억지로 절단해내는 장면은, 거세의 암시로 보기에 무리없다. 이렇듯 <매혹당한 사람들>은 정통 할리우드 장르영화보다 B급영화의 장르적 일탈에 근접하고 있다.

“나는 권위가 싫다.” 돈 시겔 감독은 평소 이런 이야기를 자주 했지만 스튜디오 시스템 내부에서 최고의 실력을 발휘하곤 했다. 액션물의 교본으로 칭송받는 <더티 하리>, <알카트라즈 탈출>(1979), <최후의 총잡이>(1976) 등 그는 1970년대에 자신의 대표작을 연이어 만들어냈다. <매혹당한 사람들>은 그의 연출력을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