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여름, 기내에서 상영했던 <트라이얼 쇼>를 통해 샤를리즈 테론을 처음 만났다. 통통한 뺨을 가진 귀여운 시골처녀였는데 발음이 힘들어 이름까진 기억하지 못했다. 뒤늦게 에서 제작한 초기작 까지 들추어 찾아본 이유는 순전히 <데블스 에드버킷> 때문이었다. 천사 같은 아내에서 유리로 자기 목을 그어야 했던 지옥 속의 여인으로 처참하게 변모하는 연기가 오랫동안 뇌리에 남았다. 8살부터 아버지 친구에게 성학대를 당하고, 아버지의 자살 이후 가장이 된 에일린이 시작한 것은 매춘이었다. 하필이면 매춘이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아직 <몬스터>를 보지 않은 사람이다. 그녀의 인생에는 선택이란 단어가 존재치 않았고 오로지 상황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없는 괴물 같은 세상은 그녀에게 자살충동만을 주었지만 어렵게 찾아온 사랑은 새 삶에 대한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몬스터>의 에일린은 감정이입을 하기엔 멀리 있고, 연쇄살인범으로 치부하며 멀리하기엔 가까이에 있는 여인이다. 단지 우리는 그녀를 적당한 거리두기에 가둬두고 그녀처럼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그녀를 몬스터로 내몰았던 괴물 같은 상황이 우리에겐 닥치지 않길 막연하게 기도하면서…. 어머니가 아버지를 정당방위로 죽이는 장면을 목격한 아픈 과거를 가졌기 때문일까? 모든 살인이 정당방위였음을 주장한 에일린 역의 연기는 가히 연구 대상급이다. 부록으로 실린 피처릿을 통해 테론은 이 영화가 연쇄살인범 이야기가 아닌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 규정한다. 피처릿에서 잠시 보여주는 분장과정에서 그녀 연기의 일정 부분에 치아와 피부 등의 분장이 일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