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6월 중순 ‘엽기 비디오’를 단체 관람했다. 김선일씨를 무참하게 죽인 집단의 이름은 ‘알 타우히드 알 지하드’(유일신과 성전). 이슬람 전사는 “나는 살고 싶다”(I want to live)고 외치는 무고한 민간인을 무참히 참수했다. ‘유일신’의 이름으로 ‘성전’의 일환으로. ‘성전’에 나선 전사들은 ‘유일신’을 믿지 않는 외국인에 대한 일말의 동정도 없었다. ‘미국을 도왔다’는 강변이면 족했다. 반면 이슬람 전사들은 터키 인질에게는 ‘이슬람 형제’의 이름으로 석방하는 온정을 베풀었다.
도대체 그들이 인질로 붙잡은 군납업체 직원과 에어컨 수리공이 그들의 ‘성전’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오직 파병국가의 ‘국적’을 가졌다는 죄밖에 더 있는가? 그들의 무자비한 폭력을 지켜보면서 그들의 성전에 대한 일말의 동정도 사라졌다. 그저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전쟁과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테러가 왼발, 오른발 호흡 맞추어가면서 움직이는 폭력의 질서가 끔찍할 뿐이다. 극단주의자들의 광기가 휩쓸고 있는 암흑의 세계가 두렵고 두렵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엽기 비디오를 연출한 부시는 아마도 화면 뒤에서 미소 짓고 있을 게다. 알량한 민간인의 목숨쯤이야 ‘불가피한’ 희생 아니겠는가. ‘파병강행’을 되뇌는 노무현 일병의 등을 토닥여가며 또 다른 ‘성전’을 부추기면 그만이다. 오히려 그의 기독교 근본주의를 강화할 절호의 찬스다. 날마다 백악관에서 또 다른 ‘유일신’에게 악의 축을 척결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린다는 부시는 스스로 이라크 침공을 ‘십자군’ 전쟁에 빗댄 적도 있지 않은가. 결국 부시와 알 카에다는 ‘근본주의’라는 같은 신앙을 지니고, ‘전쟁사업’이라는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동업자다.
이들은 민간인에 대한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서로에게 권력을 암거래하고 있다. 전쟁업에 종사하는 동업자인 알 카에다는 9·11 테러로 부시에게 ‘애국자법’(Patriot Act)라는 훌륭한 통치수단을 선물하지 않았던가. 부시는 애국자법으로 누구든 테러 혐의자로 무기한 감금하고, 전자우편과 전화까지 마음대로 감청할 수 있게 됐다. 부시는 이라크 침공을 통해 이슬람 근본주의자에게 ‘성전’을 확산할 명분을 답례품으로 안겨주지 않았던가. 근본주의자들은 이처럼 형님 아우하며 상부상조하고 있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미제에 대한 ‘성전’(聖戰) 뒤에서 여성과 동성애자에 대한 ‘성전’(性戰)도 치르고 있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통치원리로 섬기는 이슬람 율법(샤리아)에 따르면, 혼외정사를 갖거나 혼외정사로 아이를 낳은 여성은 모래에 묻어 돌로 쳐죽여 마땅하다. 실제 지난해 나이지리아의 여성 아미나 라왈은 혼외정사로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사형을 당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반면 남성은 간통을 했더라도 유죄판결을 내리려면 최소 4명의 증인이 필요하다. 그 조항에 근거해 그를 임신시킨 것으로 추정되는 남성은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은 여성들을 검은 부르카 안에 가두고, 여성들의 외출조차 금지했다. 탈레반은 퇴각을 하면서도 ‘외갓’ 남자들과 말을 했다는 이유로 여성들을 폭행하고 돌을 던졌다. 심지어 친미정권으로 조롱당하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조차 아직 여성들에게 운전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동성애자에 대한 공개 처형도 서슴지 않는다. 신문의 국제면만 꼼꼼히 살펴보아도 이슬람 국가에서 동성애자가 처벌당했다는 소식은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미 제국주의의 공격이 심해질수록 이슬람 근본주의가 강화되고, 이슬람 근본주의가 기승을 부릴수록 이슬람 여성과 동성애자의 인권은 벼랑 끝으로 몰린다. 나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여성과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한, 그들을 혐오할 것이다. 그들이 아무리 미 제국주의에 맞선 성전에서 영웅적인 투쟁을 할지라도. 이슬람 근본주의의 여성과 동성애 혐오는 ‘문화적 다양성’으로 옹호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부시 역시 ‘성전’(性戰)을 치르는 동업자다. 부시로 대표되는 미국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서구에서 여성 인권의 가늠자로 취급되는 ‘낙태의 권리’에 가장 강력한 반대자다. 동성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부시는 최근 미국에서 동성결혼의 법적 인정 여부가 이슈로 떠오르자 연방 헌법에 ‘결혼은 이성간에 하는 것’이라는 문구를 삽입해 동성결혼을 원천적으로 금지하자고 선동했다.
근본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근본’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의 ‘목숨’도 앗아가는 깡패집단이다. 일상을 전쟁터로 만드는 폭력집단이다. 그들이 어떤 명분으로 미화하든지 폭력은 폭력일 뿐이다. 김선일씨의 무고한 죽음 앞에서, 다시 한번 희망한다. ‘근본’ 없는 놈들의 세상, ‘순교자’가 없는 세계, ‘애국자’도 없는 나라를. 더 끈질기고, 더 지독하게 꿈꾼다.
신윤동욱/ <한겨레21> 기자 syu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