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제 잘못이지요.
나무꾼이 입을 열었다.
-훔칠 때 확인했었어야 했는데… 집에 와서 확인을 한 제가 잘못한 거죠. 저도 놀랐는걸요. 사실… 누가 알았겠어요? 선녀면 다 같은 선녀라고 생각했지… 설마 사이즈가 엑스 라지일 줄은…. 가뜩이나 비좁은 방… 그녀가 들어온 뒤론… 두레박만 봐도 왠지 눈물이 나요….
그래, 그럴 수 있다. 다 그런 세상이니까… 선녀도 비만해질 수 있고 뚱뚱해도 선녀가 될 수 있지…. 괜찮다… 선녀 마누라 얻겠다고 목욕하는 여자 옷 훔쳐온 네가 잘못이다. 희망을 가져라. 요즘 쇼핑 채널엔 살빼는 장비들도 많더라…. 세상이 세상이지 않더냐?
-뿐만 아니지요….
나무꾼이 계속 입을 열었다.
-훔친 그 옷 겁나게 비싸더군요. 게다가 그 옷을 할부로 산 건 줄은 꿈에도 몰랐지요. 아무리 그래도 그 할부값이 왜 우리집으로 올까요? 혼인신고도 안 했는데…. 쌓여가는 할부 용지를 보면서 애꿎은 옥황상제만 욕하고 있지요.
참아라. 다 그런 세상이다. 그럼 그 선녀가 입고 있는 옷이 천상에서 협찬받는 줄 알았냐? 그리고 비싼 거 할부로 사는 건 경제상식이다. 맘쓰지 마라. 비싼 옷 입는 선녀 마누라가 있으면 네 품위도 올라간다. 원래가 그렇다. 마누라 옷사줄 때 마누라가 기뻐하겠지 하는 남자 별로 없다. 제발 예쁘게 좀 하고 다녀라 하는 심정으로 돈 쓴다.
나무꾼은 게속 거품 물 듯이 말을 토해냈다.
-이 선녀는 담배도 피운다니까요? 난 안 피우는데…. 간접흡연이 더 나쁘다고 안 합니까? 꽉 찬 그녀의 재떨이를 갈아주며… 늘 다짐합니다. 나요, 자식 낳으면 분명히 가르쳐줄 거예요. 행여 어떤 사슴이 너한테 와서 살려달라고 하면서 그 대가로 이상한 폭포를 가르쳐준다고 하면… 고놈 발모가지를 분질러 포수한테 넘기라고… 이제 이세상 어디에도 선녀는 없다고….
못된 생각…. 왜 자식한테까지 그런 몹쓸 말을… 선녀가 왜 없냐… 그냥 좀 변했다 이거지. 담배 피우는 거 가지고 뭘 또 그러냐? 기호식품인데. 네가 안 피운다고 마누라한테까지 그러면 못쓰지…. 선녀라고 스트레스가 없겠냐 그런 걸로라도 풀게 둬라. 근데, 너 자식은 언제 보냐? 나무꾼하고 선녀 사이에서 난 자식은 별나도 아주 별나겠다.
나무꾼이 갑자기 우울한 얼굴로 변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말도 마세요. 우리 집에 들어온 지 삼년이오. 아무리 이 선녀가 상태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식만은 잘 키워보려고 했소. 그래서 나름대로 노력도 많이 했었지요. 근데… XX선녀!… 사람이 하는 짓은 다 따라한다니까요… 피임까지도. 나한텐 감쪽같이 속였다니까요. 뭔 선녀가 그래요? 그래서 화가 나서 옷장에서 옷 꺼내 입고 빨리 하늘 나라로 올라가라 했지요… 두레박도 꺼내주고… 근데 꿈쩍도 안 해요… 이렇게 살기 좋은 곳 두고 어딜 가냐구….
거기까지 들어보니 이 나무꾼 조금은 불쌍해 보인다.
그래, 그건 좀 심했다. 여하튼 정붙이고 사는 거 애기는 가져야지. 옷도 주고 두레박도 줬는데. 안 올라가는 거 보면 나무꾼 집에 정붙였나보다… 어쩌냐… 그런 세상 그런 팔자 그냥 그렇게 살아야지….
뭐라 할말도 없다… 다 나무꾼 잘못이지… 그러게… 여기서 그냥 아무 여자나 잡지 뭐 굳이 선녀를 꼬시겠다고 그 연못엔 왜 갔냐? 다 네 잘못이다.
나의 핀잔을 들은 나무꾼… 한숨을 푸욱 쉬더니 무너지듯 멸망당하듯 입을 열었다….
-그게 그런 게 아니에요… 나요… 나무꾼은 맞는데요… 난 그러려고 그 연못으로 간 게 아니에요….
그럼 왜 갔냐? 거긴?
-나… 난 정말… 금도끼 하나 얻어볼까 하고….
가끔은 그게 아닌데 그렇게 될 수도 있다… 요즘은 그런 세상이니까….
장진/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