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컬러, 89분
감독 신상옥 출연 신영균, 김지수, 김혜정
7월18일(일) 밤 11시10분
제3회 시체스환상공포영화제 황금감독상
지옥마왕의 명을 받고 왔다. 육천 세계를 내가 지옥으로 만들리라….
‘납량특집-한국 공포영화의 계보 찾기’ 세 번째 영화인 신상옥 감독의 <천년호> 홍보문구이다. 이 영화에선 우선 공포영화답게 특수효과 등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쉬워 보이지 않는 다양한 테크닉이 눈에 띈다. 그리고 이외에도 관객에게 공포와 긴장감을 지속시키려는 장치들을 마련해놓고 있는데, 예를 들어 사물과 대상을 정확하게 보여주지 않는 빠른 패닝 등 현란한 카메라 움직임과 빠른 편집, 그리고 원색을 자주 사용한 화려한 색채 등이 그러하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무엇보다 돋보이는 것은 바로 신상옥 감독의 내공있는 연출력이다. 감독은 일단 작품의 토대라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설정을 충실히 구축해놓고, 그 안에서 인간들(혹은 인간과 귀신) 사이의 관계와 그 안에 내재한 욕망과 심리묘사를 과감한 생략과 짧은 설명만으로도 군더더기 없이 정확히 보여준다. 이러한 인물들간의 사랑과 욕망을 표현하면서도 공포영화로서의 긴장감 또한 놓치지 않는다.
또 하나 이 작품에서 눈여겨볼 점은 신상옥 감독의 다른 작품에서도 그러하듯 여성성에 관한 시각이다. <천년호>의 경우 사건의 원인을 제공하는 것은 성적 욕망에 사로잡힌 진성 여왕이다. 그리고 그 욕망의 최대 피해자 역시 또 다른 여성인 여화이다. 또한 999명의 여성을 재물로 받으며 인간세계를 거느리려고 했던 천년호 역시 여성성을 가지고 있다. 이렇듯 감독은 요부로서의 여성 이미지와 희생양으로서의 여성 이미지를 모두 드러내며, 남성에게 무의식적 공포의 대상으로 작용하는 여성과 그 희생양으로서의 여성을 동시에 그려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 1960년대 당시 우리 영화를 대표했던 개성파 배우 김혜정(혹자는 그를 한국 여배우를 통틀어 글래머적인 자질을 갖춘 몇 안 되는 배우라고도 했다)의 연기를 보는 것 또한 다른 재미를 가져다줄 것이다.
이승훈/ EBS PD agonglee@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