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기모리 히데노리의 데뷔작 <물의 여인>을 보면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마다 비를 내리는 여인이 등장한다. 아버지나 약혼자가 죽은 날은 물론이고 이빨 뽑은 날에도 어김없이 비를 만드는 물의 여인과 불의 남자가 목욕탕에서 사랑하는 장면이 아름다운 영화였다. 이보다 한해 먼저 만들어진 이마무라의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에는 몸에서 물을 뿜는 여인이 등장하여 축 처진 실업자 요스케를 간장선생마냥 다시 뛰게 만든다. 66년에 이미 “남자의 행복은 식욕과 성욕에 있다”고 말했던 감독이 동어반복을 하는 듯하지만 <인류학입문>의 결말과는 전혀 다르다. <붉은 다리…>는 죄의식을 동반한 어두운 섹스만을 그려왔던 감독이 드디어 유쾌한 섹스를 보여주는 영화다.
DVD는 놓치기 아까운 두 가지를 부록으로 담고 있다. 메이킹 다큐에는 요스케와 사에코가 결혼할 것이라는 힌트와 함께 미소를 자아내는 확장된 엔딩신을 담았다. 또 한 가지는 이마무라와 미이케 다케시의 대담이다. 미이케의 극한적 영상들의 출처가 궁금했는데 바로 이마무라의 ‘날것’에서 나름대로의 변형이 됐던 것이었다. 대담에서도 소개되지만 미이케는 <붉은 다리…>의 예고편을 직접 만들 정도로 여전히 이마무라와 사제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단순하면서도 정갈한 메뉴화면이 돋보이고 <복수는 나의 것>에서부터 줄곧 사용하고 있는 1.85:1 화면비의 영상도 평균 이상의 화질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