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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100배 좋아지게 하는 방법

아직도 학교에서건 군대에서건 단체기합은 사람들을 괴롭힌다. 명목은 단결심과 공동체의식을 배양한다는 것이다. 초등교육이 불행하게도 일제의 군인을 키워내기 위한 수단으로 확산된 이 땅에서, 학교는 처음부터 단체기합의 온상이었다. 단체기합의 추억이 어디 유신 때의 말죽거리 잔혹사로만 기억될 것인가? 20세기를 관통해온 단체기합은 21세기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단체기합에서는 늘 연대의식과 단결심이 강조된다. 그런데 정말 이거 하면서 단결심 높아진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그래! 선생님은 왜 내가 잘못하지도 않은 일로 부당한 처벌을 가하는가에 대한 불만은 잠시뿐, 땀 뻘뻘 흘리며 이 북북 갈면서 ‘원인 제공자’ 욕만 해댔지! 군대 갔다온 사람들은 다 알지만, 군대에는 ‘고문관’이라는 보직 아닌 보직이 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초기에 있던 미국 군사고문관(軍事顧問官)을 말하는 게 아니다. 사고 많이 치거나 눈치없는 짓 많이 해서 전우들에게 단체기합의 고통을 당하게 만드는 사람이 고문관(拷問官)이다.

단체기합, 이거 완전히 연좌제다. 헌법 제12조 3항,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 반란범 박정희의 유신헌법에는 없었지만, 학살범 전두환이 ‘제5공화국’이란 걸 만들면서 헌법에 집어넣어 아직도 남아 있는 연좌제 금지 조항이다. 어디 헌법뿐인가? 1894년 갑오개혁 당시에도 “범인 이외에 연좌시키는 법은 일절 시행하지 마라”(罪人自己外緣坐之律一切勿施事)라는 형사책임 개별화의 원칙이 천명되었고, 멀리 거슬러올라가면 맹자(孟子)는 유교의 이상적인 군주인 주나라 문공(文公)의 치적을 말하면서 가족의 죄로 다른 가족을 벌하지 않는, 즉 연좌제를 실시하지 않은 점을 높이 평가했다.

그런데 단체기합은 연좌제이고 따라서 위헌이다라고 주장하면 반론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헌법이 금지하고 있는 연좌제의 범위는 친족인데, 무슨 종친회나 가족모임하다가 단체기합 주는 건 몰라도 같은 반 친구들이나 군대 같은 내무반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친족의 범위에 들지는 않을 테니까. 전근대의 연좌제야 그래도 혈연이라도 걸리지만, 군대에서의 연좌제인 단체기합은 정말 황당하기 짝이 없다. 어쩌다 내가 저놈하고 같은 줄에 서게 되어 이 고생이람…. 한번 당하는 건 봐주겠다. 그런데 두번, 세번 당하고서 고문관 보고 웃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왕따가 달리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이런 고문관들, 당연히 고참들의 보복, 아니, 아주 특별한 ‘교육’의 대상이 된다. 이 ‘교육’은 흔히 “말로 안 되는 놈들 손 봐줘야지”라든가 “말이 필요없는 놈”이라는 욕설이 수반된다.

지금은 많이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군대에서의 구타 사고는 이런 고문관들을 교육하다가 많이 일어난다. 군대에서 구타사고가 나면 지휘관들은 때린 놈만 처벌하는 게 아니다. 맞는 놈들도 같이 영창에 가는 일이 다반사다. 왜냐고? 맞을 짓을 했으니 때린 것 아니겠냐는 것이다. 게다가 때린 놈에 대해서 지휘관들은 “걔들은 원래 군대생활 열심히 하는 애들”이라고 동정적으로 말한다. 게으름 피우는 놈들 바로잡다가 조금 오버한 것 아니냐며 구타사고 일으킨 자를 처벌하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정말 괴로운 건 고문관 자신이다. 내가 잘못해서 나 혼나는 건 괜찮은데 엄한 사람들이 나 때문에 고생하게 되면 미안하기도 하고, 고참들 한 따까리 할 거 생각하면, 아, 이건 생각만 해도 죽음이다. 자살 사고 괜히 일어나는 게 아니다. 고문관들, 군대에서 제일 많이 듣는 말이 “너 같은 자식이 군대는 왜 와서 남들까지 고생시키냐”다. 일선 지휘관들도 이들 “복무부적응자들” 때문에 골머리를 싸안는다. 정말 왜 우리를 잡아와 우리도 힘들고, 전우들도 힘들고, 지휘관도 힘들고, 군대도 힘들어지게 만드는지 지나가는 똥개라도 붙잡고 묻고 싶은 게 이 땅의 수많은 고문관들의 솔직한 심정이다.

대만에서 대체복무제도가 도입된 이후, 군 내에서 자살이나 구타 등 안전사고가 크게 줄었다고 한다. 점잖은 말로 복무부적응자들, 즉 잠재적인 고문관들이 현역 대신 기간이 긴 대체복무에 지원했기 때문이다. 또 대체복무제를 도입하여 입영예정자들에게 선택권을 부여하게 되자, 군도 우수한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현역의 복무여건과 인권을 크게 개선한 것이다. 이미 10여만명의 대체복무인원을 운용하는 한국에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고문관들의 해방, 그리고 고문관들로부터의 해방, 이는 대체복무제도를 개선하면 좋아지는 100가지 일 중 하나일 뿐이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