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up De Torchon 1981년
감독 베르트랑 타베르니에 출연 필립 누아레
EBS 6월12일(토) 밤 11시
타베르니에 감독의 영화를 처음 본 것은 <라빠>(1995)라는 작품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무것도 부러울 것없이 성장한 청소년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내용의 영화였다. “희망의 나라 미국, 그곳에선 모든 게 쉬운 법이지”라며 일군의 청소년들이 작은 범죄에서 시작해 결국엔 살인까지 서슴지 않는다. <라빠>는 타베르니에의 대표작이라 칭하기엔 머뭇거리게 되지만 그의 연출 스타일을 요약해주는 면이 없지 않다. 프랑스 사실주의 전통을 계승하고 고전적 서사에 바탕을 두되, 범죄물의 계보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것이다. 1981년작인 <대청소>는 잔혹한 범죄와 살인극을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라빠>와 통하는 점이 있다.
영화 주인공은 코르디에. 뤼시엥 코르디에는 아프리카 작은 마을의 유일한 경찰로 나약하기 그지없다. 사람들은 게으르기만 한 그의 무능을 비난한다. 그의 부인은 여기서 한술 더 뜬다. 남편을 속이고 바람을 피우고 다니는 정도는 예사이고 포주들이 노골적으로 유혹할 정도이니 코르디에는 마을의 웃음거리일 뿐이다. 어느 날 밤 인종차별주의자 군인인 샤바송이 마을로 들어오자 무엇인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예컨대 그의 영향으로 코르디에는 변화하여 점점 더 광기어린 살인의 늪으로 빠져들어가는 것이다. 코르디에의 태도에 주변 사람들은 놀랍다는 반응을 보인다.
<대청소>는 프랑스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특정 지역을 배경으로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원작은 짐 톰슨의 글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전혀 다른 공간을 배경으로 했다는 것. 원래 20세기 초반 무렵 미국이었던 작품 배경이 영화에서 아프리카로 훌쩍 이동한 것이다. 그럼에도 인종차별 문제와 백인 위주의 성장정책 등 유사한 사항이 원작과 영화에서 나란히 흐르고 있는 점이 놀랍다. 불륜과 살인, 그리고 이기적 인간 군상의 이야기가 전혀 다른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음에도 극히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영화에서 주연배우들의 연기는 빼어나다. 우리에게 <일 포스티노>와 <시네마 천국>으로 잘 알려진 필립 누아레, 그리고 대표적인 프랑스 여배우인 이자벨 위페르가 출연한다. 비교적 산만한 이야기, 그리고 돌발적 살인극으로 일관하는 영화에서 두 배우가 만들어내는 부드러운 순간은 그나마 잠깐 동안의 구원의 순간이 되고 있다. 특히 코르디에 역할의 필립 누아레는 거의 표정 변화가 없는 캐릭터임에도 그의 내면세계의 풍부한 결을 적절하게 연기해내고 있다.
미국 원작을 블랙코미디로 각색한 <대청소> 이후 타베르니에 감독은 몇편의 영화를 통해 미국사회에 관한 정신적 탐험을 계속했다. 얼마 전 소개했던 재즈영화 <라운드 미드나잇>이 그렇고 1983년작인 다큐멘터리 <미시시피 블루스>는 소설가인 윌리엄 포크너의 정신적 유산과 블루스 음악의 뿌리를 찾는 내용의 작품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감독의 영화들은 모두 미국이라는 거대한 대륙과 그 문화를 재해석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읽힌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