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당선자가 조선일보 노조의 초청으로 강연한 것을 두고 마녀사냥이 벌어졌다. 오마이무현과 열린우리겨레가 선봉에 섰다. 언론노조와 인터넷 매체들도 분기탱천했다. 열린우리당 의장이 조선일보와 인터뷰했을 때에는 찍소리도 못했던 분들이다. 박영선 대변인이 안티조선을 “시대착오적”이라고 말해도 군소리 없던 분들이다. 열린우리당 후보들이 줄줄이 디지털 조선에 데뷔해도 아무 불만 없던 분들이다. 더러 불평이 나와도 궁시렁거리는 수준을 넘지 못했다. 그런데 노회찬에게만은 저들의 성스런 분노가 돌아간다. 왜 그럴까?
제2의 노회찬 어록이 떠돈다. 인터넷 기자협의회라는 곳에서는 “조선일보가 품질에서 제일 낫다”는 노회찬 총장의 말을 걸고넘어지며 그의 사과를 요구했다. 한 마디로 변태적인 발상이다. 도대체 조선일보가 품질이 낫다고 ‘생각’하는 게 왜 그들에게 ‘사과’해야 할 이유가 될까? 게다가 그 정도의 발언은 이미 강준만도 했던 것. 얼마 전 한겨레신문의 기자도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동시에 한겨레 학술 기사들이 조선일보의 학술기사 못지 않은 고급성을 갖추도록 노력할 겁니다.”
언론노조의 논평은 온통 횡설수설. 자기들은 소를 타고 가는데, 노총장은 왜 말을 타고 가느냐는 것이다. 자기들이 소를 타면, 남들도 소를 타야 하나? 또 조선일보와의 관계가 “비정상적이고 부자연스러운 관계”며 “쌍방이 더 적극적이고 좋은 관계로 만들어야 할 필요성에 공감한다"는 발언도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다. 장기적으로는 그렇게 되어야 한다. 안티조선은 ‘조선일보 제몫 찾아주기’로 시작했지, “일전을 불사”해 가며 조선일보를 없앨 목적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박봉을 쪼개 민주노동당의 총선 선전을 후원”했다는 한겨레신문 조합원들은 “실망의 수준을 넘어 분노와 비애감을 감출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박봉을 쪼개 열린우리당의 총선 선전에는 아예 ‘올인’을 했던 그 신문의 조합원들이 왜 정동영 의장과 박영선 대변인의 발언은 “수구언론의 물량공세에 맞서 진보적 대의에 맞는 신문을 만들기 위해 애써온 많은 언론 노동자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모욕"으로 느끼지 않는 것일까? 그 심오한 논리가 궁금하다.
2년 전부터 나는 ‘안티조선’이 궤도를 벗어났다고 경고해 왔다. 문제는 언론운동을 민주당-열린우리당의 정치적 승리를 위한 수단으로 만드는 경향이다. 이 경향은 아예 인터뷰를 한 정동영은 너그러이 용서하고, 노조의 초청에 응한 노회찬은 집단적으로 조져대는 그 징그러운 당파성 속에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MBC에서 송만기 발언을 왜곡편집했을 때, 민언련을 비롯해 조선일보를 비난하던 언론운동 단체들은 일제히 침묵했던 것을 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언론의 공정성을 확립하기 위한 고귀한 침묵?
자기들 비판하면 곧바로 ‘보복’을 한다. 한겨레는 진중권이 제 책으로 세 출판사와 겹치기 출판을 하여 부당이득을 취한 부도덕한 자라고 공격했다. 오마이뉴스는 진중권이 인성이 나빠서 교수가 못 됐다는 기사를 1면 탑으로 올렸다. 미디어오늘은 뒤샹의 ‘소변기’를 그냥 ‘변기’라 불른다고 진중권은 “똥오줌도 못 가리는” “뽕론가”라는 처참한 수준의 비평을 기사로 올렸다. 기사의 제목도 정치적이다. ‘조선일보와 진중권의 미술평론.’ 조선일보도 나를 공격할 때 이렇게 유치하게 하지는 않았다. 이게 언론인가?
‘안티조선’, 점검이 필요하다. 너무 유치하게 교조화됐다. 조선일보는 당분간 우선감시대상으로 놔두더라도, 이제 모든 활자매체, 방송매체, 인터넷 매체로까지 비평의 영역을 넓혀야 한다. 조선일보 닮는다고 조선일보가 극복되겠는가? 조선일보가 공정성이 없다면, 자기들만은 공정성을 실천해야 한다. 조선일보가 사람을 잡으면, 자기들은 그 짓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게 조선일보를 극복하는 길이다. 한번쯤 조선일보 비난하던 자기들은 얼마나 공정한 저널리즘을 실천했는지 파지음경하고 반성할 때도 됐다. 노회찬을 비판하려면 제대로 하고, 광란의 마녀사냥만은 당장 중단하라.
진중권/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