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에 짓눌려져 땅 위에 붙박힌 우리 몸뚱이는 무게를 가진 존재이다. 반면에 상상력의 세계는 질량 0의 비물질의 세계로 무한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삶 속에서 의식과 관념과 사상과 생각은 65kg 몸뚱이보다 더 무거웠다. 인류는 그렇게 무거운 몸뚱이에 그보다 더 무거운 관념을 쌓으며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청동기에서 철기시대를 거쳐, 다시 석유화학과 중공업과 글로벌 거대기업과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시대를 이루면서 자꾸만자꾸만 무거워졌다. 그리고 이제 더이상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가진 인류는 이제 다시 새로운 생존문명으로 가벼움의 테크놀로지-디지털 시대를 개척하고 있다.
가벼움에 대하여, 밀란 쿤데라만큼 멋진 문장을 창조한 사람이 있을까. 그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제목만으로도 웬만한 장편소설 전문 이상의 생각의 동기를 제공한다. 그것은 ‘존재’라는,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단어를 ‘가벼움’이라는 단어와 병치시킴으로써, 환호성을 참을 수 없을 만큼 통쾌한 관념의 도약을 자극했다. 쿤데라 덕분인지는 몰라도 그 이후로 견디기 어려웠던 무거움들이 차례차례 일회용 종이컵이 되어 산뜻하게 날아올랐다가 미련없이 폐기처분된다. 육중했던 브리태니커백과사전도 더이상 발행되지 않지만 www.britannica.com 한줄로 요약되어 웹 브라우저의 즐겨찾기에 가뿐하게 등록되어 있다. 덩달아 이념도, 신념도, 신앙도, 도덕과 윤리와 전통과 규범들도 가벼워질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촛불은 확실히 화염병보다 가볍다. 공산당보다는 붉은 악마가 가볍다. 클래식보다는 팝이 가볍고, 음반보다는 MP3 파일이 가볍다. 이국의 우표가 붙은 그림엽서보다 이메일이 훨씬 가볍고, 문자 메시지는 전화통화보다 한결 가볍다. 질량 0의 디지털 시대. 관념은 몸뚱이보다 무거워질 수 있지만, 소프트웨어는 결코 하드웨어보다 무거워질 수 없다. 이념조차도 디지털 정보로 온라인 배포될 때는 클릭, 클릭, 다음페이지로 손쉽게 넘어가고, 복사, 등록, 삭제가 아무런 갈등없이 이루어지면서 구름처럼 가벼워진다. 세계는 급속도로 가벼워지고 있다. 이 가볍고(경輕) 얇은(박薄) 것이 날개인가 껍질인가. 몸뚱이는 여전히 꼼짝없이 무거운데 의식이 이렇게까지 가벼워지니 균형을 잃는다. 날아가는 것인지, 날려가는 것인지, 비상하는 것인지 추락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너무 가벼워서 사라져가는 것 같다. 그것이 두려워서인지, 세상이 가벼워질수록 마음이 무거워져간다. 글·그림 김형태/ 무규칙이종예술가 www.thegim.com